항목 ID | GC020024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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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論山忠憲祠 |
영어의미역 | Chungheonsa Shrine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62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전용우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2년 10월 28일 - 논산충헌사 논산시 향토유적 제14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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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07년 11월 30일 - 논산충헌사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4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논산충헌사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성격 | 사우|사당 |
건립시기/일시 | 1626년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2칸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62 |
소유자 | 청주 양씨 종중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 청주 양씨 선조를 제향하는 사당.
[개설]
논산충헌사는 충헌공(忠憲公) 양기(楊起)를 주향으로 하고, 양치·양희지·양응춘·양훤 등을 제향하고 있는 사당이다. 양기의 본관은 청주, 호는 암곡, 시호는 충헌이다. 양치는 양기의 증손으로 호는 퇴은(退隱)이다. 세종 때 김종서를 도와 육진을 개척하고 두만강을 국경선으로 확장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황해도·함길도 병마사를 지냈다.
양희지는 양기의 8세손으로 호는 대봉(大峯)이다. 연산군 때 호당대사헌을 지냈다. 양응춘은 양기의 13세손으로 호는 도곡(道谷)이다. 회덕 현감 재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조헌을 따라 금산 싸움에서 전사, 이조 참의에 추증되었다. 양훤은 양기의 14세손으로 호는 어촌(漁村)이다. 광해군 때 폐비 사건이 일어나자 낙향하여 학문을 닦았다.
[위치]
상월면사무소에서 국도 23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1.5㎞ 가면 도로 동쪽에 노성천 가는 길이 있고, 이 길로 800m 지점에 주곡리 입구가 있는데, 여기서 700m 들어가면 논산충헌사가 자리 잡고 있다.
[변천]
논산충헌사는 건립 시기가 1626년이라 되어 있는데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계속 사우가 존재하였는지는 의문이다. 조선조 서원, 사우는 16~17세기부터 시작해 18~19세기에 전성기를 맞다가 흥선 대원군 때 일제히 철퇴를 맞았기 때문이다. 논산충헌사가 17세기부터 제대로 된 사우의 형태를 갖추고 존립하였다면 『조두록(俎豆錄)』이나 『열읍원우사적(列邑院宇事蹟)』,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등 원사(院祠) 전문 사료에 실려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아마도 대부분의 문중 사우가 그렇듯이 논산충헌사도 논산 지역에 영향력을 가진 사우라기보다는 가묘 등의 형태로 존재해 오다 근래 들어 사우로 탈바꿈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형태]
논산충헌사는 삼문과 사우로 이루어져 있으며, 솟을대문 형태의 삼문에는 경례문(敬禮門)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사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바닥을 한 단 높게 조성한 후 낮은 초석에 둥근 기둥을 세우고 맞배지붕을 올렸으며, 방풍판 시설이 되어 있다. 논산충헌사 주변은 낮은 담이 두르고 있으며 담은 고택과 연결되어 고택의 후원에 사우가 이어져 있는 형태이다. 고택의 사랑채 앞면에는 경모당(敬慕堂)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현황]
논산충헌사는 제향 인물의 면면으로 보아 청주 양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92년 논산시에서 향토유적 제14호로 지정되었고, 2007년 11월 30일에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4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논산충헌사는 17세기부터 사우의 연원을 두고 있으나 실제 300여 년 전의 건물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후대 들어 청주 양씨 가문에서 자파의 선조를 모신 사우로 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