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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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山- |
영어의미역 | Playing with Folk Music Instruments in Hwangsanbeol |
이칭/별칭 | 두레풍장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 |
집필자 | 김효경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 황산벌 일원에서 음력 7월 초·중순에 농사의 신명을 돋우는 두레 풍물놀이.
[개설]
황산벌은 넓은 들판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들녘이 넓어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되었다. 황산벌에서 음력 7월 초부터 중순까지 고된 농사일을 하면서 힘든 것을 잊기 위해 일음악으로 쓰이던 풍물놀이가 바로 황산벌풍장놀이다. 일터에는 늘 풍물이 함께 한다. 일과 어우러진 풍물을 이곳에서는 풍장이라 부른다. 꽹과리, 북, 장고, 징, 긴나팔로 이루어진 풍장패의 다양한 장단은 농군들의 손놀림과 발걸음에 맞추어 달라진다.
[연원]
풍물놀이가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동이전(東夷傳)』을 보면, “오월이면 밭 갈기를 마치고 제사를 지낸 후 여럿이 모여 밤낮으로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한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임금이 군사들에게 북소리와 나발 소리를 들으면 모두 나가서 싸우기를 권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현재의 풍물놀이와 같지는 않지만 군악대처럼 군대의 사기를 높이거나 신호를 하기 위해 풍물놀이가 쓰이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것은 오늘날 풍물놀이에서 많이 보이는 진법에서도 드러난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농번기가 되면 황산벌 지역의 마을마다 두레를 조직했다. 공동 작업을 할 때는 두레꾼들을 일하는 사람과 풍물을 치는 사람으로 나누었다. 두레 깃발을 꽂고 일꾼들이 논으로 들어가면 풍물패는 풍물을 치면서 흥을 돋우었다. 일과 놀이가 어우러진 우리네 일터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은 고통이 아니라 놀이로써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김을 매고 잠깐의 참을 즐기면서 풍장을 곁들여 힘든 노동의 수고를 잊는다. 그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의 고통을 반감시킴으로써 보다 활기찬 노동의 현장을 만드는 것이다.
[현황]
1991년에 황산풍장놀이회가 창립되어 황산벌풍장놀이를 계승·발전시키고 있다. 현재 35명의 단원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각종 사회단체 행사 및 불우이웃돕기 공연과 노인을 위한 잔치를 비롯해 총 200회의 광장 공연을 실시하였다. 또한 논산시 국악발전과 국악보급을 위한 시민 무료 강습회를 52회 개최해 2,300여 명이 이수하는 등 지역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