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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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東民神道碑 |
영어의미역 | Spirit Path Monument of Bak Dongmi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성진 |
성격 | 신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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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조선시대 |
관련인물 | 박동민 |
높이 | 150㎝ |
너비 | 57㎝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박동민의 신도비.
[개설]
신도비는 종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내야 세울 수 있는데, 박동민은 사후에 증직되어 종2품인 참판 벼슬을 받아 신도비를 세우게 되었다. 증조와 조부가 현달하고 형제와 아들이 높은 벼슬을 한 집안이다. 묘를 이곳에 쓰고 자손들이 세거하면서 번성하고 있다.
[건립경위]
박동민은 예빈시참봉으로 있으면서 1593년(선조 26)에 죽었으나 아들 박환의 공훈으로 호조참판에 증직되었고 사망한 지 200여 년 후에 자손들이 신도비를 세우게 되었다.
[위치]
상월면 대우리 마을 공동 우물 곁에 세워져 있다. 대우리는 연산에서 공주 방면으로 가다가 상월면으로 들어섰을 때 고개 아래에 있는 대우리 표지판을 보고 동쪽 산을 향하여 들어가면 나온다.
[형태]
비신은 오석이며 지붕돌[가첨석]을 얹었고 높은 농대석 위에 세워져 있다. 비신의 크기는 높이 150㎝, 폭 57㎝, 두께 37㎝이다. 비신 사면에 각자했으며 5㎝ 크기의 전액과 1.7㎝ 크기의 해서로 된 비문이다.
[금석문]
비의 전액은 ‘예빈시참봉증호조참판박공신도비(禮賓寺參奉贈戶曹參判朴公神道碑)’로 되어 있고, 비문은 박종훈이 짓고 박시수가 비문을 서사했으며 전액은 박주수가 썼다. 비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박공은 1556년에 박응천의 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소(紹)공은 벼슬이 사간이었는데 영의정으로 증직되고 호는 야천(冶川)이다. 공의 형제로는 박동현과 박동선이 있는데, 박동현은 문인으로 학식이 높고 김장생과 교유하였으며 벼슬이 응교, 보덕에 이르렀고 박동선은 좌참찬에 이르고 정헌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공은 반남인으로 자를 군각이라고 하고 문장과 절의가 높았다. 임진난이 일어나자 가족을 데리고 피난길을 가다가 병을 얻어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묘는 이 고을 동쪽 소곡 백련봉 아래 임좌 자리, 곧 상월면 대우리에 있다. 배위 전주이씨는 익안대군 후예로 공이 돌아가자 남편을 따라 죽을 것을 결심하고 열흘 뒤에 돌아가니 사람들이 의롭게 여겨 조정에 알리니 정려가 내려졌다. 3남 1녀를 두었다. 후손의 이름은 비문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현황]
전형적인 조선 후기의 신도비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비의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이곳에 사는 종가의 관리 하에 잘 보전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반남박씨가 대우리와 상월면 일대에 세거하게 된 것은 박동민의 입향에서 비롯되었다. 논산시에는 여러 문중의 신도비가 여러 기 있는데 그중의 하나로 조선 후기의 씨족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