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6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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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礪山宋氏 |
영어의미역 | Yeosan So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이연숙 |
세거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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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
입향시기/연도 | 1300년대 중반 |
성씨시조 | 송유익(宋惟翊) |
입향시조 | 송전(宋琠) |
[정의]
송유익을 시조로 하고 송전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연원]
여산은 현 전라북도 익산이다. 여산송씨 시조 송유익(宋惟翊)은 고려 때 진사로 나라에 공훈을 세워 여산군에 봉해졌으며 은청광록대부로 추밀원부사에 추증되었다. 문헌에 의하면 송유익의 선계는 중국의 경조 출신으로 당나라에서 호부상서를 지낸 송주은의 후손 송자영이다.
송자영은 슬하에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장남 송유익은 여산송씨 시조가 되고, 차남 송천익은 은진송씨 시조가 되고, 막내 송문익은 서산송씨 시조가 되어, 우리나라 모든 송씨의 연원을 이룬 것으로 전해진다. 여산송씨 가문이 번성하는 시기는 4세손 송송례(宋松禮) 대에 와서이다. 여산송씨는 조선시대 영의정 1명과 좌의정 1명, 왕비 1명을 배출하였으며 판서급 인물을 많이 배출한 이름난 가문이다.
[입향경위]
정가공파의 파조인 송서(宋瑞, ?~1353)의 세 아들 중 둘째인 송윤번(宋允蕃)이 낙향하여 진잠에 묘소를 남겼고, 송윤번의 장자 송전(宋琠)과 송전 자손들의 묘소가 화악리에 있는 것으로 보아, 송전은 1300년대 중반 연산면 화악리로 이거해 온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조선 전기 연산현에 이거하여 정착한 사족 가운데 제일 먼저 입향한 성씨는 여산송씨가 되었다.
[현황]
여산송씨가 연산면 화악리에 정착한 이후 외손 가문이 계속 입향하였다. 대표적인 여산송씨 외손 가문은 고성이씨·가평이씨·전주이씨·성주도씨 등이다. 이러한 외손 가문의 입향으로 인하여 연산면 화악리에서 여산송씨의 입지는 점차 약화되어 조선 중·후기에는 연산 지역에서 여산송씨의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까지 되었다.
[관련유적]
여산송씨 묘역과 제단이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산20번지에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는 여산송씨 정가공파 파조 송서의 제단(祭壇)을 비롯하여 장남 송인번(宋仁蕃)의 묘와 송윤번의 제단이 있고 송윤번의 장남 송전의 묘와 송전의 삼남 송인산(宋仁山)의 묘, 송인산의 차남 송문림의 묘와 송문림의 자손들 묘가 조성되어 있다. 묘역 면적은 132㎡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