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10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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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王祭 |
영어공식명칭 | Yongwangje |
이칭/별칭 | 용신제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집필자 | 김도현 |
[정의]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용왕을 위하여 제물을 준비해서 지내는 제사.
[개설]
삼척 지역에서 용왕제를 지내는 전통은 신라에 이어 고려, 조선을 거쳐 현재에 이른다. 용왕제를 지내는 목적과 사례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정월대보름에 지내는 용왕제, 내륙 지역 마을에서 지내는 용왕제, 해안 지역 해신당에서 지내는 용왕제, 어민들이 지내는 용왕제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연원 및 변천]
동해를 배경으로 바다에서의 안전 도모 또는 바다로부터 올 수 있는 액살을 막기 위하여 신라 이래 고려와 조선시대에 동해에서 용왕을 주요 신령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는 각종 기록이나 설화는 매우 많다. 이와 같은 전통은 현재 동해안 지역 민간신앙 전통에도 영향을 미쳐 마을 단위 제의에서 바다에서의 안전을 위하여 삼척 지역에서 하위 제차로 용왕제를 지내고 있음을 폭넓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사부 장군의 출항지로 여겨지는 오십천 하구의 사직동 서낭당에서 모시는 신령은 성황·토지신과 함께 용왕을 위패 형태로 모시고 있다. 인근의 근덕덕산 서낭당에서도 용왕을 모신다. 이를 통하여 동해안 지역에서 용왕을 모신 전통은 매우 오래 되었으며, 형식은 산신이나 성황신을 협시하는 형태로 모시거나 마을 고사를 지낼 때 하위 제차로 용왕제를 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근덕면 양리에서는 매년 정월대보름날 새벽에 물가에 나가 그해 1년 동안 닥칠 액운을 막는 한편 건강 기원을 위하여 용왕제를 지내는 가정들이 있다. 2012년에는 두 집에서 지냈다. 현지 조사한 사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사례 1]
가) 장소 : 근덕면 양리 정○○ 댁 제사방[건넌방]
나) 일시 : 2012년 2월 6일[음력 1월 15일] 오전 6시~ 6시 40분
다) 절차
① 정월대보름 조상제사
·모신 신위 : 현비유인(顯妣孺人) 김해(金海) 김씨(金氏) 신위(神位), 현고학생부군(顯考學生府君) 신위(神位)
·제의를 할머니가 진행하였다. 며느리가 미리 준비한 제물을 차려 놓은 후 새벽 6시에 메와 국 두 그릇을 가져 와서 진설한 후 수저를 메에 꽂는다[삽시(揷匙)]. 이후 술잔 2개에 술을 부어서 올린 후 재배한다.
·재배할 때 아들과 며느리, 딸들이 잘되길 기원하였다.
·재배 후 수저를 내린 후 메를 덮고, 사고 없기를 기원하며 다시 재배한다.
·재배 후 음복을 한다.
② ‘용왕님에게 퇴송한다’[‘용왕제’ 의미]
·조상제사를 지낸 후 진설한 음식의 일부씩을 떼어내 바가지에 담는다.
·제사 음식을 담은 바가지에 부엌칼을 담아서 물가로 간다.
·제사 음식을 담은 바가지를 든 채 물가를 향하여 그해 1년 동안 여러 가지 우환을 없애 달라는 구송을 한 후 헌식하고, 칼을 던져서 용왕이 응감을 잘하였는지를 확인한다. 칼이 밖을 향하면 응감을 잘한 것으로 여긴다.
라) 관련 내용
·예전에는 가족이 모여서 함께 제사를 지냈지만 지금은 가족들이 출가하여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지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 몸이 안 좋아져서 할머니 혼자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별도로 정월대보름 액막음이나 용왕제를 지내지는 않는다.
·날이 밝으면 용왕님에게 퇴송한다.
- 1년 12달 내내 아무 사고가 없기를 부탁하며 퇴송한다. 용왕님에게 “퇴송한다.”고 알린다.
- 예전에 둑이 없을 때는 거랑[마읍천]에 나가 용왕님께 퇴송하였지만 지금은 둑으로 가로막혀 있어 둑을 넘어가기가 불편하여 둑방 앞에서 한다.
[사례 2]
가) 장소 : 근덕면 동막 6리 3반김○○ 할머니[쥐띠]댁.
나) 일시 : 2012년 2월 6일[음력 1월 15일] 오전 7시 52분~ 8시
다) 절차
· 오곡밥[쌀, 팥, 밤, 대추, 잡곡]을 하여 바가지에 담음
· 집 앞의 개울로 가서 밥을 헌식하고 깨끗한 물을 떠 옴
· 집으로 돌아와서 오곡밥을 먹음[물김치, 생선구이, 장, 간장 양념]
라) 기원 내용 : 그해 1년 동안의 액 막음, 가족 건강 기원
2. 내륙 지역 마을에서 지내는 용왕제
삼척시 노곡면 여삼리에 속한 마을에서 서낭고사를 지낸 후 산기슭에 있는 샘터에서 용왕제를 지낸다. 이 지역이 석회암 지대여서 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물 부족을 해소하려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용왕제를 지냈다. 이들은 서낭고사를 지낸 후 소지 올리기와 음복을 한 후 별도로 준비한 술과 간단한 제물을 가지고 금줄을 미리 쳐 놓은 우물[샘]에 가서 용왕을 위한다. 용왕을 위하는 이유는 마을에 가뭄이 들지 않길 기원하기 위함이다. 마을에 물이 귀하여 용왕제[우물고사]를 반드시 지내어 물을 안정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이 없어서 총각이 장가를 못 간다는 얘기도 전해 온다. 상수도가 보급된 1980년대에 이르러 더 이상 물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지 않게 됨에 따라 이후 용왕제는 지내지 않는다.
3. 해안 지역 해신당에서의 용왕제
삼척 해안 지역에서 어업을 주요 생업 기반으로 하는 마을 대부분은 서낭굿을 주기로 한다. 현재까지 서낭굿을 하는 마을은 후진을 비롯하여 8개 마을이다. 대치성이란 이름으로 정성을 드리는 마을은 장호1리와 2리이다. 이때 하위 제차로 바다에서 죽은 원혼을 위로하는 한편 안전 기원을 위하여 바닷가에서 용왕굿을 한다.
용왕굿을 할 때 개별로 용왕상을 마련해 내는 것에 주목할 수 있다. 수사(水死)[익사]한 가족이 있는 가정에서는 그 원혼(冤魂)을 위무하기 위하여 개별로 용왕상을 마련한다. 이때 무당은 용왕굿을 하면서 원혼을 위하여 굿을 한 석 베푼다. 개별로 베풀어야 하는 수사자(水死者) 위무를 공동의 마을제사에 포함시킨 것은 결국 마을 주민 전체가 바라는 종교 성격의 욕구와 이것이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 즉 바다에서의 안전, 수사로부터의 구원을 바라는 마음에서 원혼을 공동으로 위무하는 제차를 마련한 것이다. 이처럼 육지나 산간 지역에 비해 해안 지역의 서낭제에는 자신들의 삶에 가장 위해한 수사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남, 후진 마을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하위 제차로 용왕제를 지냄으로써 바다에서의 안전을 기원한다. 매년 주기로 지내는 해신당에서의 제사 과정에서 용왕제를 지내는 마을은 후진을 비롯하여 7개 마을이다. 이 가운데 대진은 별도의 해신당이 없이 마을 성황당에서의 제의 과정에 하위 제차로 용왕제를 부둣가에서 지낸다. 대진 이외의 마을 가운데 용왕제를 지내는 마을은 해신당이 별도로 있어서 해신당에서의 제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하위 제차로 용왕제를 간단하게 지낸다.
용왕제를 지내는 마을 가운데 작진을 제외한 6개 마을에서는 주기로 서낭굿을 하던 마을로, 이들 마을에서는 서낭굿의 하위 제차로 용왕굿을 하였고, 이러한 전통이 매년 주기로 지내는 해신당에서의 제사에서 용왕제를 지내는 것으로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4. 어민들의 용왕제
용왕제의 경우도 선주가 주재한다. 용왕제는 풍어와 해상에서의 안전을 위해 지낸다. 예컨대 다른 배의 경우 조업이 잘되는데 비하여 본인 소유 배의 경우 어업이 잘되지 않을 때 용왕제를 지낸다. 때로는 선원이 초상집을 갔다 와서 탈이 나거나 짐승이 죽는 것을 본 경우에도 선주가 부정을 없애고 풍어를 빌기 위하여 용왕제를 지낸다.
용왕제를 지낼 때는 반드시 동네 서낭에 먼저 들른 다음에 바다로 가야 한다. 우선 서낭에 가서 부정을 치고, 차려 온 음식을 바친 뒤에 용왕제의 시작을 고한다. 동네 서낭을 위해서는 돼지머리를 올리기도 하지만 바다의 용왕을 위해서 차리는 제물에는 돼지머리를 쓰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서낭고사가 끝나면 새로운 음식을 차려서 바다로 나간다. 음식이 차려지면 다시 부정을 친다. 풍어와 해상 안전을 위한 비손을 하고, 퇴송을 하고 나서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