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1163
한자 凝窩李源祚不遷位祭祀
영어공식명칭 Eungwa I Wonjo Bulcheonwi Ancestral Rites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설병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사미당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421 지도보기
성격 불천위 제사
의례 시기/일시 음력 8월 2일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응와 종택에서 음력 8월 2일 거행되는 불천위 제사.

[개설]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1792~1872]는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1738~1816]의 문인이다. 이원조는 18세 때인 1809년(순조 9)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한 이후, 헌종·철종·고종 등 4조에 걸쳐 문신으로 봉직하였다. 응와 이원조 불천위 제사는 지금부터 70년 전, 유림이 응와를 불천위로 옹립한 이래 이원조의 기일인 음력 8월 2일 성주 응와 종택에서 매년 거행되고 있다. 응와 이원조 불천위 제사는 영남 도내 유림이 옹립하였으므로 유림 불천위(儒林不遷位)이자 도 불천위(道不遷位)에 해당한다.

[연원 및 변천]

1954년 1월 4일 영남 도내의 유림은 만귀정(晩歸亭)에 모여 응와를 도 불천위로 결의하였다. 이러한 사실과 관련하여 응와 이원조의 5세 종손 이수학[74세, 2011년 당시]은 언론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국 불천 자격은 충분하나 당시 나라가 없는 상황이라 도 불천위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유림은 석채례(釋菜禮)를 거행하였다. 석채는 유림의 공적인 제사로, 주로 채소류를 제물로 올리는 간이 제사를 가리킨다. 같은 해 봄 종가에서는 응와의 신주와 함께 4대의 신주를 모시고 길제(吉祭)를 거행하였다. 길제란 종손이 바뀜에 따라 신주를 고쳐 쓰고 지내는 성대한 제사를 가리킨다.

응와 종가는 시대 환경에 맞추기 위해 2000년경부터 제사 시각을 기일 밤 9시로 바꿨다. 2010년 9월 9일 밤 8시에 거행된 응와 이원조 불천위 제사를 일반인에게 처음으로 공개하였다. 성주한개마을보존회 사무국장 이수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불천위 제사의 공개 배경에 대해, “차츰 변질되고 사라져 가는 전통 제례를 원형대로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전통 경조 사상과 제례 의식, 제사 음식, 복식[제복], 건축[사당] 등을 두루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응와 이원조 불천위 제사에 참석하는 제관 수는 30~40명이다.

[절차]

응와 이원조 불천위 제사는 밤 9시에 성주 응와 종택 사랑채인 사미당에서 거행된다. 원래 당일 축시(丑時)인 새벽 1시경에 거행되었다. 하지만 종손이 대구에서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 당일 저녁 제사로 바뀌었다. 제사 절차는 대략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집사분정(執事分定)-제구(祭具) 점검-진설(陳設)[1차 진설]-출주(出主)-강신(降神)-참신(參神)-진찬(進饌)[2차 진설]-초헌(初獻)-독축(讀祝)-종헌(終獻)-유식(侑食)-사신(辭神)-철상(撤床)-음복(飮福). 이처럼 큰 틀에서 보면 제사 절차 등은 다른 종가와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응와 이원조가 평소 좋아하던 음식인 집장을 제수로 반드시 사용한다. 또 다른 차이는 술잔을 올릴 때 도적·어적·계적을 차례로 올린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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