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23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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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寀 |
영어공식명칭 | Hwang Chae |
이칭/별칭 | 자공(子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홍갑 |
성격 | 무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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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출신지 | 성남시 수정구 사송동[현 시흥동] |
생년 | 1644년(인조 22) |
몰년 | 1726년(영조 2) |
본관 | 창원(昌原) |
대표관직 | 장단부사(長湍府使) |
묘지 | 성남시 수정구 창곡동 선영 |
[정의]
조선 후기 성남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창원(昌原). 성남시 수정구 사송동(현 시흥동) 출신이다. 자는 자공(子公). 아버지는 황유사(黃有師)이고, 어머니는 이상린(李尙隣)의 딸이다. 부인은 김류(金磂)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도승지를 거쳐 좌찬성(左贊成:종1품)에 올랐던 황일하(黃一夏)이고, 증조(曾祖)는 사계(沙溪) 문인이자 김천역 찰방을 지낸 황면(黃沔), 고조부(高祖父)는 예천군수를 역임한 황입중(黃立中)이다.
[활동사항]
천거(薦擧)로 입사하였다가 무과(武科)에 합격하여 관직을 더하였다. 영조 38년(1762) 장단 부사(長湍府使) 재임시 감관(監官)과 색리(色吏)를 시켜 대동미를 환롱(幻弄)하게 하였다는 장령 유서오(柳敍五)의 탄핵을 받아 일시 파직되기도 했으나, 영조는 그의 무재(武才)를 아껴 이듬해에 다시 경상 좌수사로 삼았다. 정조가 즉위하여서는 황해도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로 파견되었고, 정조 2년(1778)에는 병조판서와 각 영의 장신들을 포상하는 자리에서 궁전(弓箭)을 하사 받기도 했다. 산계(散階)가 종2품 가의대부(嘉義大夫:嘉靖大夫를 영조 때 고친 이름)까지 올랐고,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의 종2품 부총관(副摠管)을 역임했다.
[묘소]
묘는 성남시 수정구 창곡동 장수황씨 선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