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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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波知島戍 |
영어음역 | Gopajidos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고파도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해준 |
변천 시기/일시 | 1895년 - 서산군 문현면 고파도리와 태안군 북일도면 고파도리가 태안군 북일면 고파도리로 통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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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94년 - 행정 구역 개편으로 서산군 팔봉면 고파도리로 변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373년 - 왜구 침임으로 태안군 폐군 |
비정 지역 | 고파지도수 -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고파도리 |
성격 | 고지명 |
관련 문헌 | 『태종실록』|『세종실록지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호산록』|『여지도서』|『충청도읍지』 |
[정의]
조선 시대 충청도의 수군 편제에 따라 서산에 속해 있던 방어 시설.
[개설]
고려 후기 서해안 지역에 왜구가 자주 침입하여 1373년(공민왕 22)에는 태안군이 폐군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 서해안 일대에 군사 시설을 마련하면서 파지도에 성을 쌓게 되었다. 조선 전기에 들어와서는 고파도에 파지도만호진을 설치하였고, 태종 때에 파지도만호영을 태안 호리로 옮기면서 이곳에 고파지도수를 두고 군사를 주둔시켰다. 그 후로 원래 파지섬은 옛파지섬 또는 고파지도로 불리게 되었다.
[형성 및 변천]
고려 후기 왜구의 출몰에 대비하기 위해 충청도의 병마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는 이산(伊山)[지금의 예산군 덕산읍 읍내리]에 지휘부를 두고 그 예하에 병마첨절사(兵馬僉節使) 수어처(守禦處)로 순성진과 남포진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이와 짝하는 수군 편제는 수(戍)를 기반으로 7개의 만호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고려 후기에 설치된 수를 기반으로 조선 전기에 수군진이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충청수영 휘하에 소근포첨절제사와 마량진첨절제사가 있고, 그중 소근포첨절제사 휘하에는 당진포만호와 파지도만호가 속해 있었다. 파지도만호가 있던 진영이 지금의 고파도리로, 조선 태종 때에 파지도만호의 영을 호리로 옮기면서 고파지도수가 자리하게 되었다.
파지도만호는 정조 때에 평신진[지금의 서산시 대산읍 대산곶]으로 합쳐졌다. 고파도 해안에 성터가 남아 있는데,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 따르면 군의 서쪽 문현면 35리에 위치하며 성의 둘레가 1,087척, 높이가 11척에 달하며 우물이 1개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서산시 팔봉면 고파도리는 조선 시대에 서산군 문현면 고파도리와 태안군 북일도면 고파도리로 나뉘어 있었다. 즉 하나의 섬이지만 두 개의 고을에 각각 속해 있었던 것이다. 1895년(고종 32) 행정 구역 개편 당시 두 마을이 통합되어 태안군 북일면 고파도리가 되었지만 199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서산군 팔봉면 고파도리가 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파도의 자연 마을은 끝뿔말·윗말·아랫말·당산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