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5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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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殊寺地藏十王幀畵 |
이칭/별칭 | 「문수사 극락보전 지장보살도」,「문수사 지장도」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문수골길 20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용윤 |
제작 시기/일시 | 1774년 3월 - 「문수사 지장시왕탱화」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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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03년 10월 30일 - 충청남도 유형 문화재 제173호 지정 |
현 소장처 | 수덕사 근역성보박물관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2길 79[사천리 20-1] |
원소재지 | 문수사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문수골길 201[태봉리 산5] |
성격 | 회화 |
작가 | 설훈|수해|정관|영인|정순|순택|선홍|승익 |
서체/기법 | 비단 바탕에 채색 |
소유자 | 수덕사 |
관리자 | 수덕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유형 문화재 제173호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문수사에 있는 지장시왕탱화.
[개설]
지장시왕탱화는 지장삼존과 명부의 10명의 대왕인 시왕을 한 화면에 함께 그린 불화이다. 지장시왕탱화는 주로 대웅전, 극락전 등 주 불전이나 암자의 법당에 좌측 혹은 우측 벽에 신중도와 마주보게 건다. 주로 사찰의 대웅전과 같은 주 불전 혹은 암자의 법당 한쪽 벽에 걸어 천도 의식을 거행한다. 「문수사 지장시왕탱화」는 1774년 수화승 설훈의 주도하에 수해, 정관, 영인 등이 조성하였다. 2003년 10월 30일 복장 발원문 및 복장 유물과 함께 충청남도 유형 문화재 제173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문수사 지장시왕탱화」는 액자형으로, 화면 크기는 133×157㎝이며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다. 높은 연화 대좌에 결가부좌한 지장보살은 승형 머리에 검은색 투명 두건을 쓰고 있으며 왼손에는 육환장, 오른손에 수정 구슬을 들고 있다. 지장보살 무릎 아래에는 젊은 승려의 모습을 한 도명존자와 제왕형 인물인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있다.
지장보살 오른쪽에는 면류관과 원류관을 쓴 제왕 모습의 시왕(十王) 가운데 제1, 제3, 제5, 제7, 제9대왕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맞은편에는 제2, 제4, 제6, 제8, 제10대왕이 있다. 시왕 위로는 권속인 판관, 사자, 귀졸, 선악동자가 배치되어 있다. 화면 가운데 지장보살은 주변의 시왕과 권속에 비해 크게 그려 화면에서 존재감을 두드러지게 표현하고 시왕과 권속은 존격에 따라 크기를 작게 표현하였다.
좌우에 시왕은 열을 맞추면서도 존상 간의 간격을 자연스럽게 배치하고 자세, 시선, 지물 등을 다양하게 처리하였다. 배경으로 상단에는 지장보살의 두광에서 뻗친 오색 서기가 그려져 있고 천공(天空)에는 구름이 가득하며, 바닥에는 돗자리가 표현되어 있다. 화면 밖 상단에는 복장낭(腹藏囊)과 풍패(風佩)가 그려져 있다.
[특징]
「문수사 지장시왕탱화」는 1774년에 수화승 설훈(雪訓)의 주도하에 수해(守海), 정관(淨寬), 영인(永印) 등이 참여해 제작하였다. 「문수사 지장시왕탱화」는 조선 후기 지장시왕도의 일반 형식을 따라 존상을 구성하면서도 설훈이 시도했던 새로운 표현이 반영되어 있다. 설훈은 활동 초기 각총(覺聰)을 수화승으로 모시고 「신륵사 삼장보살도」[1758]를 제작하였다.
「문수사 지장시왕탱화」는 「신륵사 삼장보살도」의 지장회상 부분을 기본적으로 따르면서도, 본존을 크게 강조하고 시왕의 자세와 표정을 다양하게 묘사하였으며 현실 공간처럼 바닥에 돗자리를 표현하는 등 새로운 표현이 시도되었다. 특히 바닥의 돗자리 표현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전반에 서울·경기 지역에서 활동했던 화승이 선호하던 기법이다.
[의의와 평가]
설훈은 18세기 중엽에서 후반 서울·경기 지역에서 활동했던 화승이다. 「문수사 지장시왕탱화」는 서울·경기 지역의 화승이 충청남도까지 내려와 활동하였음을 보여주는 자료이자 설훈의 초기 화풍을 보여준다. 또한 불화 보수 시 발견된 간찰(簡札)[편지]은 조선 후기 화승의 불화 작업 방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