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4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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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蓮池浚池記 |
영어공식명칭 | The Historical Record of Yeongi after Dredging Wor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유미 |
작성 시기/일시 | 1900년 - 「연지준지기」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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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시흥시청 향토사료실 - 경기도 시흥시 시청로 20[장현동 300] |
성격 | 고문서 |
관련 인물 | 강희맹|권만형|권용정|권태선 |
발급자 | 권태선 |
수급자 | 권씨 가문의 자손 |
[정의]
경기도 시흥 지역이었던 조선시대 안산군 내 관곡지 준설에 관하여 권씨 가문에 전해지는 문서.
[개설]
「연지준지기(蓮池浚池記)」는1900년(대한제국 광무 4) 5월 관곡지(官谷池) 준설에 관한 사안을 자손들이 알 수 있도록 권태선(權泰善)이 기록한 것이다.
[제작 발급 경위]
관곡지는 조선 세조 때 강희맹(姜希孟)이 경기도 안산군[지금의 시흥시 하중동 208]에 조성한 연못으로 1986년 3월 3일 시흥시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보존되고 있다. 1463년(세조 9) 강희맹은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로 진헌부사(進獻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갔는데, 귀국할 때에 중국 난징[南京]에 있는 전당지(錢塘池)에서 꽃잎이 희고 뾰족하며 끝부분만 담홍색을 띠는 연꽃 씨를 채취해 가져와서, 당시 안산군 초산면 하중리에 재배하였다.
이후 관곡지 일대에 널리 퍼졌으며 이로 인해 안산군의 별호(別號)가 1466년(세조 12)부터 ‘연성(蓮城)’으로 칭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강희맹 사후에 관곡지는 방치되어 황폐해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1844년(헌종 10) 안산군수로 부임한 권용정(權用正)에 의해 재정비가 되어 이전의 아름다운 자태로 회복되었다. 이는 권용정의 직계 선조인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권만형(權曼衡)이 강희맹의 사위가 되어 이 관곡지가 권씨 가문에 속하게 된 것에 기인한다.
권용정은 경기도관찰사 이계조(李啓朝)에게 안산군에 있는 관곡지 정비를 위해 연지기 6명을 배치하고 그들에게는 군역(軍役), 인역(烟役), 환호(還戶) 면제해 주기를 청하는 『안산군수 서목(安山郡守書目)』을 올려 관찰사로부터 윤허를 받았다. 이후 권용정은 이러한 사항을 1846년(현종 12) 『연지사적(蓮池事蹟)』에 상세히 기록해 두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연지기들에게 면제된 각종 잡역들이 부과되면서 관곡지의 관리가 소홀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1883년(고종 20) 안산군에서 연지기의 면역을 재확인해 주기 위해 「안산군 완문(安山郡完文)」을 발급해 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이러한 연지기를 통한 관곡지 관리 운영제가 혁파되자, 권씨 종중에서 합의하여 선산의 나무를 베어다가 판매하여 얻은 500냥으로 관곡지를 준설하였다. 그리고 1900년(대한제국 광무 4) 5월 이러한 사안을 자손들이 알 수 있도록 권만형의 현손(玄孫)인 권주(權柱)의 직계 후손 권태선이 기록하였다.
[형태]
낱장의 형태로 되어 있으며, 크기는 세로 41.5㎝, 가로 57.5㎝이다.
[구성/내용]
발급일자는 '경자(庚子) 5월 상순(上旬)[1900년으로 추정]'이고, 발급처는 '후손 태선(後孫泰善)'으로 되어 있다. 내용은 연지기를 통한 관곡지 관리 운영제가 혁파되자 종중의 합의로 선산의 나무를 베어다가 판매하여 얻은 500냥으로 관곡지를 준설한 사항을 자손들이 알 수 있도록 기록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공식적 차원의 안산군에서의 연지 관리가 이제 종중 차원에서 선영을 지키는 나무를 팔아 준지(浚池)하게 된 사정을 간략하지만 진실하고 거짓이 없게 그리고 있다. 본래 청빈하고 종전(宗錢)이 없지만 나무를 베어 내어 팔아서라도 연못을 준지하여 자연을 보호하려는 권씨 가문의 뜻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