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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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佛塔 |
영어공식명칭 | Pagoda |
영어의미역 | Pagoda |
영어공식명칭 | Pagoda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모창 |
[정의]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통일신라시대~근대에 이르기까지 건립된 석탑.
[개설]
현재 순천시 관내에는 통일신라시대 3기, 고려시대 5기, 조선시대 1, 근대 1기 총 10기가 남아 있다.
[통일신라시대]
순천 금둔사지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세워진 3층 석탑이다. 기단부에서 상·하층기단의 탱주가 각각 1개인 점, 상층기단 중석받침이 호·각형의 2단인 점, 초층 탑신받침이 각형 2단인 점, 탑신부에서 양 우주가 표현된 점, 탑신받침이 각형 1단인 점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후반에 세워진 것으로 생각되는 삼층석탑이다. 상층기단 중석과 1층 탑신 면석에 팔부신장과 문비, 공양자상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전남에서는 화엄사 서오층석탑, 광양 중흥산성 삼층석탑에만 보이는 것으로 섬진강 유역에서 유행했던 형식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전라남도 지방 석탑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순천 선암사 동·서삼층석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쌍탑으로 이중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기단의 탱주가 상·하 각각 1개인 점, 상층기단 중석 받침이나 초층 탑신 받침이 각·호·각형 3단인 점, 옥개 받침이 4단으로 통일된 점, 옥개석 상면의 탑신 받침이 호·각형 2단인 점 등으로 보아 9세기 후반에 세워진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순천 선암사 동삼층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에 의해 최소한 2차례 이상의 중수 사실을 알 수 있어 통일신라 석탑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통일신라시대 쌍탑가람의 유행이 장흥 보림사와 함께 전남지방에서도 유행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고려시대]
순천 동화사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계승한 탑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기단의 상·하갑석 상부가 지붕곡과 흡사하고, 갑석 상부가 심하게 경사면으로 처리하여 다른 석탑에서는 보기 드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 탑은 일견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양식을 계승한 일반형 석탑으로 보이지만, 기단 갑석, 옥개석[석탑, 석등의 지붕돌], 각 부재가 폭보다 높이가 높아 세장하게 보이며 규모가 크다는 점 등에서 고려적인 요소를 보인 삼층석탑으로 고려 초기 석탑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향림사 삼층석탑은 단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갑석에 부연을 각출하였고, 3단의 옥개석 받침 등은 시대적으로 하대로 내려오는 퇴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옥개석의 윗면에서 나타나는 높직한 1단의 받침대 등이 더욱 시대상의 하한을 보여주고 있어 조성 시기는 고려 후기로 추정되는 석탑이다. 전남지방에서는 유일하게 건립되어 남아 있는 고려시대 쌍탑이라는 점에서 전남지방 석탑연구의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순천고등학교 교정 삼층석탑은 전체적으로 보아 단층 기단 위에 탑신과 옥개석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식 삼층석탑이지만, 3단의 옥개석 받침, 1단의 탑신 받침, 기단중석의 탱주를 모각하지 않는 점 등이 시대적으로 하대로 내려오는 퇴화 현상을 보여주고 있어 조성 시기는 고려 후기로 추정되는 석탑이다. 순천고등학교 교정 삼층석탑은 비록 3층에서 1개 층이 잃어버렸지만, 석탑의 이전 경위 등을 알 수 있어 고려 후기 삼층석탑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이 외에도 서면 흥대리 학동마을 주택 안에 면석으로 보이는 부재 1매, 옥개석 3매, 상륜부의 부재로 추정되는 부재 1매가 전해진다. 옥개석 층급받침이 3단인 점, 옥개석의 낙수면이 약간 깊고, 지붕돌의 귀솟음이 약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 후기에 조성된 석탑의 부재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및 근대]
조선시대 삼층석탑으로는 순천 매곡동 탑재가 유일하다. 지대석으로 추정되는 부재와 3매의 옥개석만이 남아 있다. 옥개석은 층급받침이 2단이고, 옥개석 상단에 탑신 받침이 낮게 호형으로 조출(彫出)되어 있다. 순천 매곡동 탑재는 3층으로 추정되며, 석탑에서 발견된 금동불감 및 아미타삼존상이 1468년에 제작되었다고 발원문에 기록되어 있어 순천 매곡동 탑재의 조성 시기는 13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순천시청 앞 삼층석탑은 기단은 결실되었다. 탑신 괴임과 양 우주, 탱주를 마치 액자처럼 양감 없이 표현하였다. 옥개석 낙수면이 깊고, 전각의 반전은 급격하다. 삼층 옥개석과 상륜부는 일석으로 노반[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상륜부를 받치는 부재] 위에 복련을 새겨 마치 옥개석형 노반처럼 보이며 괴임을 두었다. 상륜부는 노반과 별석인 보주를 올렸다. 정확히 이 석탑이 어느 사찰에서 건립되어 이건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시대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삼층석탑으로 추정된다.
[특징과 현황]
순천 지역의 불탑(佛塔)에 나타난 특징을 살펴보면,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순천 금둔사지 삼층석탑은 2층 기단 위에 세워진 3층 석탑으로 상층기단 중석과 1층 탑신 면석에 팔부신장과 문비, 공양자상이 새겨져 있다. 순천 선암사 동·서삼층석탑은 2중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이다. 순천 선암사 동삼층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에 의해 최소한 2차례 이상의 중수 사실을 알 수 있어 통일신라 석탑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석탑 중 순천 동화사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가진 고려 초기 삼층석탑으로 각 부재가 세장하게 보이며 규모가 크다는 점 등에서 고려적인 요소를 보인다. 향림사 삼층석탑은 전체적으로 보아 단층 기단이며 갑석에 부연을 각출하였고, 또한 3단의 옥개석 받침 등은 시대적으로 하대로 내려오는 퇴화 현상을 보여주고 있으나 고려시대 전라남도 지방의 유일한 쌍탑이라는 데에 그 가치가 있다. 이 외에도 순천고등학교 교정 삼층석탑과 서면 흥대리 학동마을 주택 담벼락에 고려시대 석탑의 부재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 석탑은 매곡동에 남아 있는 순천 매곡동 탑재가 유일하다. 지대석으로 추정되는 부재와 3매의 옥개석만 남아 있다. 2003년 개인이 순천 매곡동 탑재를 무단으로 이탈하면서 1468년 제작한 청동불감 및 금동아미타삼존상이 발견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은 석탑이다.
근대의 석탑은 순천시청 앞에 세워져 있는데, 갑석 위에 3매의 옥개석과 옥개석보다 규모가 작은 장방형의 탑신석, 상륜부재 등이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순천 지역 불탑은 통일신라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건립되었고 전남지방 석탑연구의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9세기에 건립된 순천 금둔사지 삼층석탑과 순천 선암사 동·서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에 본격적으로 순천 지역에 불교가 전해졌음을 밝혀 주는 중요한 자료일 뿐 아니라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순천 동화사 삼층석탑의 경우 통일신라시대 양식과 고려 초기의 양식이 동시에 보여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양식적 변천을 보여주고 있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