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051
한자 自然災害
이칭/별칭 천재지변(天災地變)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상일

[정의]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일어난 태풍·홍수·산사태·해일·폭설·가뭄·황사 등의 이상 기상 현상과 지진·화산 등의 자연 현상 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재해.

[개설]

한반도의 경상북도의 내륙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의성군은 낙동강의 지류 하천인 위천쌍계천이 가로지르고 있어 여름철 집중 호우나 태풍으로 인한 풍수해를 입기도 한다. 또한 하천의 유로가 짧고 겨울철 강수량이 부족하여 봄철에 가뭄 피해를 입기도 한다.

[풍수해]

의성 지역에서 발생하는 자연재해의 대부분은 기상 재해로, 그 중 풍수 피해가 가장 많다. 특히 여름철 장마나 태풍 등으로 인한 집중 호우로 인명 피해 및 농경지가 침수되고 주택이 파괴되는 등 재산상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의성군에서 발간한 2008년 『의성 통계 연보』에 따르면, 풍수해로 인해 2007년 1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침수 면적은 2006년 639.93㎢, 2008년 71.76㎢이다. 피해액 총액은 2006년 14억 5121만 4000원[건물 3300만 원, 농경지 1572만 8000원, 공공시설 13억 546만 2000원, 기타 9702만 4000원], 2007년 1억 2661만 6000원[건물 1500만 원, 공공시설 1억 1012만 4000원, 기타 149만 2000원], 2008년 29억 3302만 2000원[농경지 7449만 9000원, 공공시설 28억 5852만 3000원]이다.

의성군을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가로지르며 흐르는 낙동강의 지류 하천인 위천안계면, 구천면, 단북면 지역에 넓은 평야를 조성하였는데, 매년 장마와 태풍 등으로 인한 위천의 범람과 제방 붕괴 등의 문제점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 지난 1998년 춘산면에 362.5㎜의 비가 내린 것을 비롯해 금성면 255㎜, 의성읍 212㎜ 등 의성군 1개 읍과 17개 면지역에서 평균 178㎜ 이상의 집중 호우로 인해 주택 300여 채와 농경지 2,620ha가 침수 또는 유실되었고 하천 제방 24개소와 3만여m가 붕괴된 것으로 집계되었다. 특히 200㎜ 이상의 집중호우가 내린 의성읍·사곡면·단촌면·점곡면·옥산면·춘산면·가음면·금성면·안평면 등 동부 지역 1개 읍과 8개 면은 대부분의 마을과 농경지가 침수되었다. 위천의 범람으로 인해 길이 217m, 높이 8m에 이르는 위천 제방이 100여m 가량 붕괴되면서 안계면위양리, 교촌리, 안정리 주민 200여 가구 700여 명이 긴급 대피하고 농경지 수백ha가 침수되기도 했다.

2003년 9월 제14호 태풍 매미로 인한 의성 지역의 평균 강우량은 145.7㎜이며, 최대 강우량은 춘산면 지역에서 230.5㎜를 기록하였다. 이로 인해 제방이 범람하는 피해가 발생하였다. 시간 최대 강우량은 춘산면 지역에서 48.5㎜로 기록되었다. 이러한 집중 호우로 인해 의성 지역에서 발생한 총 피해액은 231억 원이고, 인명 피해는 1명 사망하였으며, 이재민은 66가구에 142명이 발생하였다.

건물 피해액는 5억 3000여만 원이며, 도로 및 교량 35개소의 파손을 비롯하여 배수문 2개소와 배수 펌프장 3개소를 포함한 수리 시설 85개소 등 공공 시설 542개소 220여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 이 밖에도 양어 72만여 마리의 유실과 축사 7동, 비닐하우스 104동[4.76ha]도 피해를 입었다.

대부분의 침수 피해는 배수 시스템의 불량으로 인한 것이고, 제방의 붕괴 혹은 범람에 의한 피해는 쌍계천의 옥정제 지점과 금오천의 금오 2리 지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위천의 미천제 제방이 40여 m 붕괴되어 농경지 600ha가 침수되었으며, 과수원에서는 다수의 낙과 피해가 발생하였고, 가옥 11동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2007년 9월 제11호 태풍 나리로 인해 의성 지역에 평균 74.1㎜의 비가 쏟아 졌으며, 이로 인해 일부 지역에서는 87ha[봉양면 1.1ha, 비안면 65ha, 구천면 4ha, 단밀면 1.9ha, 안계면 15ha]의 농경지가 침수되었고, 21ha[단밀면 5.1ha, 단북면 4ha, 다인면 5ha, 신평면 2ha, 구천면 0.5ha, 봉양면 0.4ha, 안계면 4ha]에 걸쳐 벼가 넘어지는 도복의 피해를 입었다.

의성군은 2010년부터 낙동강의 지류 하천인 위천을 생태 하천으로 조성하기 위해 위천 제방 및 주선 제방 등 기존 제방 구간 중 5.0㎞ 구간을 정비하였고, 용곡 재해 위험 지구 정비 사업을 통해 2.5㎞의 제방을 보강하였다. 이를 통해 안계면, 단밀면, 단북면 지역은 위천의 범람이나 제방의 붕괴 등 재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가뭄]

의성은 하천의 유로가 짧고 강우량이 적어 매년 가뭄 피해를 겪어 왔다. 그래서 지방 자치 시대 이후 근본적인 물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00년 총 462억 원을 투자하여 사곡 저수지를 착공하였고, 의성 상수도 확장 공사, 안계 광역 상수도 확장 공사를 하였고, 249억 원을 투자하여 구천 지구 농업용수 개발 사업, 73억 원을 투자하여 안사 중하지 건설, 31억 원을 투자하여 삼촌 지구 지표수 보강 등 굵직한 사업들을 진행하여 농업, 공업, 생활용수 등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중이다.

[황사]

1973년부터 2012년까지 기상청 자료를 통해 살펴본 의성 지역에서 발생한 황사 일수는 1월 4회, 3월 11회, 4월 39회, 5월 19회로 총 73일이다. 그중 1973년~1982년의 3월 5회, 4월 14회, 5월 15회이고, 1983년~1992년의 3월 1회, 4월 12회, 5월 3회이다. 그리고 1993년~2000년의 1월 4회, 3월 5회, 4월 13회, 5월 1회이다. 이상의 결과에서 보면 의성 지역에서는 봄철인 3월~5월에 주로 황사가 관찰되며, 다른 시기에는 관찰되지 않았다. 그러나 2001년 이후 의성 지역에서는 황사의 관찰 일수가 없는 것으로 보아 의성 지역은 황사로 인한 피해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지진]

한반도를 포함한 유라시아판이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상태에서 인도-호주판이 북상하면서 유라시아판을 더욱 동쪽으로 밀고 있으므로 서쪽으로 이동하는 태평양판과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충돌 에너지는 1차적으로 일본이나 중국에서 해소되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지진의 안전지대로 여겨지고 있다. 그럼에도 한반도에서 끊임없이 지진이 발생하는 이유는 충돌의 힘이 100% 사라지지 않고 지각에 축적되어 있다가 약한 단층대를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특히 경상남도 진해시에서 경상북도 영덕군으로 이어지는 양산단층과 울산에서 경주로 이어지는 울산단층이 활단층으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 남동부 내륙에 위치한 의성군 일대도 지진의 안전지대이기는 하지만 1991년 4월 14일 의성의 북부 지역인 36.5N, 128.7E 지점에서 규모 3.1, 2003년 3월 14일 의성의 남쪽 약 15㎞ 지역인 36.2N, 128.7E 지점에서 규모 2.1 등의 지진이 발생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지진이 발생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조선왕조실록(朝鮮王祖實錄)』에는 의성 지역에서 총 20회의 지진이 일어났다는 기록이 보인다.먼저 태종 때는 1406년(태종 6) 8월 5일과 1416년(태종 16) 4월 17일로 총 2회, 세종 때는 1425년(세종 7) 1월 4일과 2월 17일, 1427년(세종 9) 7월 15일, 1430년(세종 12) 4월 18일과 9월 13일로 총 5회로 가장 많은 기록이 남아 있다. 중종 때는 1511년(중종 6) 9월 5일, 1523년(중종 18) 1월 12일, 1544년(중종 39) 2월 3일로 총 3회, 명종 때는 1546년(명종 1) 4월 20일과 5월 29일, 1548년(명종 3) 3월 5일, 1557년(명종 12) 5월 3일로 총 4회의 지진 기록이 있고, 선조 때는 1606년(선조 39) 12월 15일, 인조 때는 1641년(인조 19) 4월 12일, 효종 때는 1657년(효종 8) 5월 13일, 숙종 때는 1717년(숙종 43) 1월 8일로 각 1회씩 지진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선조실록』에는 경상도 관찰사 유영순(柳永詢)이 “의성 현령 강극유(姜克裕)의 첩정에 ‘이달 4일 묘시 초에 지진이 북쪽에서 일어나 서쪽으로 향했는데 기둥과 집이 흔들렸고 한참 만에 그쳤다.’ 하니 비상한 이변입니다.”라고 치계한 기록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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