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의 침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451
한자 倭寇-侵入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호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381년 6월연표보기 - 비인현에 왜구가 침입
발생|시작 시기/일시 1383년 6월연표보기 - 의성현에 왜구가 침입

[정의]

고려 말 왜구가 경상북도 의성 일대에 침입한 사건.

[개설]

고려 말에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해져 해안 지방을 넘어 내륙으로까지 그 피해가 미쳤다. 의성 지역도 이 시기에 왜구의 침입을 두 차례 받아 큰 피해를 입었다.

[역사적 배경]

왜구는 13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고려뿐만 아니라 중국에까지 침입하여 약탈과 살인 등을 일삼았던 해적들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일본 남북조의 혼란기에 발생한 집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 충정왕(忠定王)[1349~1351]부터 우왕(禑王)[1375~1388] 대까지 피해가 심하였는데, 이로 인해 섬이나 해안 지대의 주민들을 내륙으로 옮기고 읍치까지 이동시킬 정도였다. 왜구의 피해는 해안뿐만 아니라 내륙 깊숙한 곳에까지 이르렀는데, 이는 의성 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경과]

왜구가 본격적으로 침입한 1350년(충정왕 2)부터 고려 말까지 왜구의 피해를 입은 곳은 전체 520개 군현의 46.5%에 해당하는 242개 군현이었다. 경상도의 경우 128개 군현 가운데 73%가 피해를 입었으니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왜구의 피해가 컸다. 의성 지역 역시 왜구의 침입을 두 차례 받았다. 1381년(우왕 7) 6월 비인현(比仁縣)[현재의 의성군 비안면]이 왜구의 침입을 받았고, 1383년(우왕 9) 6월에는 의성현에 왜구가 침입하였다. 이때 왜구는 안동의 길안현을 비롯하여 안강·기계·영주·신령·선산까지 출몰하였다. 이로 인해 의성 지역을 위시한 경상도 일대는 심각한 인적·물적 피해를 입었다.

[결과]

우왕 말년에 이르면 왜구의 침입 기세가 뚜렷하게 약화된다. 이성계, 최영, 정지 등의 활약도 원인의 하나였지만 남북쟁란이 종식되어 일본 열도가 안정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388년(우왕 14)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 일파가 권력을 장악하여 본격적 개혁이 시작되면서 왜구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양광도·경상도·전라도 지역 군현의 읍세를 보완하기 위해 유민의 안집을 비롯하여 수취 업무의 조정과 강화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영역을 재조정하는 한편 공양왕 대에 감무를 대대적으로 파견하였다. 의성 지역도 1390년(공양왕 2)에 안정현(安定縣)에 감무를 파견하고 비옥현을 겸임하게 하였는데, 이는 왜구의 침입으로 피해를 입은 의성 지역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조처로 이해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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