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508 |
---|---|
한자 | 德陽書院 |
이칭/별칭 | 요당 서사(蓼塘書社),요당 서원(蓼塘書院)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옥매길 93-2[대사리 61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지국 |
건립 시기/일시 | 1805년 - 요당 서사 창건 |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868년 - 요당 서사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 |
이전 시기/일시 | 1948년 - 요당 서사를 의성으로 이건·복원하며 덕양서원으로 개칭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1년 9월 6일 - 덕양서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7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덕양서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현 소재지 | 덕양서원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옥매길 101 |
원소재지 | 덕양서원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대사리 618 |
원소재지 | 요당 서사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 |
성격 | 서원 |
양식 | 박공지붕 겹처마[상충사]|팔작지붕 세겹처마[경의당] |
정면 칸수 | 3칸[상충사]|4칸[경의당] |
측면 칸수 | 5칸[상충사]|2칸[경의당] |
소유자 | 김녕 김씨 대종회 |
관리자 | 김녕 김씨 대종회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대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설 교육 기관.
[개설]
덕양서원(德陽書院)에는 조선 전기의 문신 김문기(金文起)[1399~1456]가 배향되어 있다.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건립되었던 요당 서사(蓼塘書社)가 그 전신이다. 1991년 9월 6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위치]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옥매길 101[대사리 617]에 있다. 대사1리 경로당에서 옥매길을 따라 100m 가량 이동하면 왼쪽에 창고와 일반 주택 사이로 좁은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약 20m 올라가면 덕양서원과 김녕 김씨(金寧 金氏) 충의공파(忠毅公派)의 종택이 자리를 잡고 있다. 서원은 1,000여 평의 대지에 건물이 층계식으로 포진된 형태이며, 계획적으로 잘 조성되었다.
[변천]
덕양서원은 본래 1805년 공주 지방 유림의 협조를 받아 김녕 김씨 문중에서 건립한 것으로, 요당서사라고 하였다. 김문기를 비롯하여 단종의 삼정승, 성희(成熺)·조순생(趙順生)·윤원(尹愿)·정천경(鄭天卿)·윤각(尹慤) 등 세조가 왕위를 찬탈할 때 순절한 충신들을 함께 배향한 사묘이다. 요당 서원(蓼塘書院)이라고도 전해지나, 1908년 간행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의 서원향사록(書院鄕祠錄) 공주목(公州牧) 항목을 비롯하여, 1924년 강교석에 의해 편찬 간행된 『전고대방(典故大方)』의 서원·향사 항목, 1860년대 김정호에 의해 편찬된 『대동지지(大東地志)』 공주목 서원사묘 항목에서 그 기록을 찾을 수 없다. 다만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 『공주지(公州誌)』 서원 항목에 등장하는 ‘요당 서사’라는 기록만이 확인된다. 19세기 초 공주 지방 유림과 그 배향자의 후손들이 발의하여, 서사라는 이름으로 내려오다 1868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
1930년 김녕 김씨 종가가 합천에서 의성군 춘산면으로 이주함에 따라, 공주와 의성 지역의 유림과 문중의 공의로 1948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복원하였다. 이때 이름을 요당 서사(蓼塘書社)에서 덕양서원(德陽書院)으로 바꿨다. 대덕리(大德里)의 양지(陽地)라는 뜻에서 ‘덕양’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말하기도 하며, 김문기가 함경도 관찰사로 재직할 당시 둔전법을 펴 선정으로 덕을 쌓은 데 연유한다고도 전해진다.
[형태]
덕양서원은 1.5m의 축대 위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상충사(尙忠祠), 사당, 제물대(祭物臺), 경의당(景義堂), 동재, 서재, 유의문(由義門), 화장실 등 8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전당후묘(前堂後廟)의 배치 양식을 보인다.
상충사는 정면 3칸, 측면 1.5칸 규모로 익공계[익공이 1개 사용된 초익공] 맞배지붕 건물이다. 배치 형식이 비교적 정연하다. 강당인 경의당은 정면 4칸, 측면 1.5칸 규모의 익공계[익공이 2개 사용된 이익공] 팔작지붕 건물이다. 자연석 축대를 1.5m 가량 높게 쌓았고 양 측면에 건물에 오르는 자연석 계단을 설치하였다. 1948년 공주와 의성 유림 및 김녕 김씨 문중의 합의로 공주에 있던 요당 서사의 자재를 옮겨와 이건했다고 전해진다.
[현황]
원래는 김문기를 단독으로 배향하였는데 현재는 김문기의 아들인 김현석(金玄錫)[1420~1456]도 함께 배향한다. 3월 초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경내에는 ‘덕양서원(德陽書院)’을 비롯하여 ‘유의문(由義門)’·‘경의당(景義堂)’·‘진수재(進修齋)’·‘긍척재(兢惕齋)’·‘상충사(尙忠祠)’ 등의 현판이 있다. 관리는 김녕 김씨 대종회에서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강당인 경의당은 1948년 이건할 때 전부 새 재목으로 원형과 꼭 같게 복원한 것이지만, 조선 후기 양식을 잘 나타내는 익공계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지붕처마 밑에 이중부연을 단 것은 특이한 예이다. 2동의 사당[상충사 외]도 비교적 원형 그대로 이건되어 보존이 잘된 맞배지붕 건물로 역시 조선 후기 건축 양식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