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5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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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義城雲谷堂 |
이칭/별칭 | 운곡당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마을길 61[산운리 15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지국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9년 12월 30일 - 의성 운곡당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74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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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3년 4월 8일 - 의성 운곡당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65호로 승격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의성 운곡당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재지 | 의성 운곡당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리 158 |
성격 | 가옥 |
소유자 | 이병직(李炳稷) |
관리자 | 이병직(李炳稷)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가옥.
[개설]
의성 운곡당(義城 雲谷堂)은 이희발(李羲發)[1768~1859]이 건립한 것으로 전하는 영천 이씨(永川 李氏) 문중의 고택이다.
[위치]
의성 운곡당은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마을길 61[산운리 158]에 있다. 산운 생태 공원 주차장 입구 앞에 있는 도로를 따라가면 산운 노인 회관이 나온다. 노인 회관 옆에 난 조그마한 길을 따라 약 400m 올라가면 나지막한 구릉과 평지 위에 의성 운곡당이 자리를 잡고 있다. 산운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3㎞가량 떨어진 곳에는 이희발의 정자인 용문정(龍門亭)이 있다.
[변천]
의성 운곡당의 내력을 밝히는 것은 원사료의 소략함과 더불어 근래 편찬된 자료들 간의 내용 차이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 『희정공 운곡 선생 연보(僖靖公雲谷先生年譜)』에 따르면 36세 되던 해 정침(正寢)을 세우고 상량문(上樑文)을 지었다고 하니, 이 건물이 처음 세워진 시기는 1803년(순조 3)으로 볼 수 있다. 61세가 되던 해 ‘거실에 정재(定齋)라는 편액을 걸었다’고 하니 적어도 1828년(순조 28)에는 건물이 완성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문화 유적 분포 지도』 등 대부분의 자료에서는 이희발이 영월 부사로 재직할 당시 의성 운곡당을 건립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건립 시기는 적어도 1826년(순조 26) 이후가 된다. 이상의 기록들을 정리해 보면 의성 운곡당은 빠르면 1803년, 늦어도 1828년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
의성 운곡당은 북쪽에 솟은 금성산을 뒤로 하고 남동쪽을 향해 있다. 전면의 토석 담장 사이에 세운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ㅁ자 형 정침이 배치되어 있다. 정침의 양측 칸은 앞으로 익사(翼舍)가 돌출되어 대문채와 함께 ‘일(日)’자 형의 배치를 이룬다. 정침의 왼쪽 뒤편에는 사당이 별도의 영역을 이룬다.
안채의 평면은 ㄷ자 형태로 그 앞 왼쪽으로 ㄱ자형의 사랑채, 우측의 ㄱ자형의 고방채는 중문칸을 통해 연접되어 ㄷ자형을 이루어 안채와 상하 병렬로 연결되어 있다. 중문칸 앞에는 안채로 들어가는 시선을 차단할 수 있게 길이 3m, 높이 2m의 ㄴ자형 차면(遮面)담을 설치하였다. 전통 가옥을 보면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쌓아 놓은 차면담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남녀유별, 부부유별과 같은 유교 이념이 건축에 반영된 것이다. 안채의 마루를 높게 만들어 사랑채 손님으로 누가 오는지를 볼 수 있도록 해 놓은 점이 특이하다.
[현황]
의성 운곡당은 영천 이씨 후손인 이병직이 소유·관리하고 있다. 의성 운곡당은 1999년 12월 30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7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다가 2013년 4월 8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65호로 승격 지정되었으며,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1920년대에 일부 개축되었으나 의성의 대표 양반 마을인 산운 마을에서도 손에 꼽히는 고택(古宅)으로, 조선 후기 양반 저택의 형태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