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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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先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선사/선사 |
집필자 | 홍정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30만 년 전 - 구석기 시대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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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만 년 전 - 신석기 시대 시작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3,000년 전 - 청동기 시대 시작 |
소재지 | 용암리 구석기 유적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산18 |
소재지 | 옥정동 고인돌 - 경기도 양주시 옥정동 산84-1 |
소재지 | 양주 옥정리 선돌 - 경기도 양주시 옥정동 산627-1 |
소재지 | 유양동 고인돌 무리1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410 |
소재지 | 유양동 고인돌 무리2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626 |
소재지 | 마전동 고인돌 무리 - 경기도 양주시 마전동 291-22 |
소재지 | 만송동 고인돌 무리 - 경기도 양주시 만송동 636 |
소재지 | 용암리 유물 산포지1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산14-1 |
소재지 | 선암리 고인돌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 산39 |
소재지 | 하패리 고인돌 무리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하패리 665-2 |
소재지 | 하패리 유물 산포지2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하패리 575-10 |
소재지 | 신산리 유물 산포지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 산1-1 |
소재지 | 한산리 고인돌 - 경기도 양주시 남면 한산리 123-1 |
소재지 | 가납리 유물 산포지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 산21 |
소재지 | 덕도리 유물 산포지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 산97-1 |
[정의]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전개된 역사 이전의 시대.
[개설]
문자 기록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선사 시대와 역사 시대는 나라와 지역마다 다르며, 또 한 나라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다르다. 이것은 역사의 발전 과정이나 속도가 나라나 지역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선사 시대는 석기 시대·청동기 시대·철기 시대 등 세 시기로 구분하며, 석기 시대는 다시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로 구분한다.
[석기 시대]
1. 구석기 시대
양주 지역은 한강, 임진강, 한탄강의 풍부한 수계에 둘러싸여 있으며 이들 수계를 연결하는 다양한 지류가 관통하는 비옥한 평야 지대이므로, 구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양주를 생활의 터전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러나 인근 연천, 동두천, 의정부 지역에서 이미 구석기 시대의 유적이 다수 확인되고 있는데 비하여 양주 지역에서는 은현면의 용암리 유물 산포지에서 다각면원구(多角面圓球)와 긁개 등의 구석기 유물이 채집되었을 뿐, 더 이상의 구석기 유적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연천 지역에서는 이미 세계적인 유적으로 확인된 전곡리 유적을 비롯하여 원당리, 임진강 하류인 파주의 주월리, 가월리 유적 등의 구석기 유적이 있고, 동두천 지역에서도 다수의 구석기 유물이 채집되고 있다.
한편, 이들 임진강 수계의 자갈 석재 계통 유물과는 달리 의정부시 민락동과 포천 늘거리, 포천시 어룡동, 일동면 화대리,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 남양주시 호평동 등에서 백두산 계통의 흑요석제(黑曜石製) 유물이 수습되어 한강 수계를 따라 내려오는 구석기 이동 경로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양주 지역은 임진강 계열의 강자갈 문화와 백두산 계통의 흑요석 문화가 접점을 이루는 지역으로서 앞으로 의미 있는 구석기 유적이 존재할 개연은 충분하다고 보인다. 이와 같은 개연성에도 불구하고 양주에서 구석기 유적이 드물게 나타나는 것은 임진강이나 한강 등 구석기인의 생활 가능 환경에서 상당히 떨어져있는 지리적 상황에 기인한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2. 신석기 시대
현재 양주에는 신석기 유적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연천의 횡산리, 삼거리, 의정부의 용현동, 동두천의 송내동, 걸산동 등 인근 지역에서 다양한 신석기 유물이 채집되고 있는데 비하면 상당히 의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신석기인들이 거주하며 농경을 시작할 만한 수계(水界)가 없다는 점에서 상황의 설명이 가능하다고 보인다.
[청동기 시대]
양주에서는 고인돌과 선돌이 다수 발견되는 한편 민무늬 토기편들도 수습되고 있어 이 지역에 정치권력과 함께 본격적인 농경이 이루어지고 있었음도 확인할 수 있다. 단, 발견되는 고인돌의 전부가 개석식(蓋石式)이라는 사실은 양주의 청동기가 남방 계통이라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하는데, 이는 양주에 인접한 포천, 연천, 강화 등지에 다수의 탁자식 고인돌이 발견되는 점을 감안할 때, 양주가 북방 계열 청동기 문화와 남방 계열 청동기 문화의 접점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이는 구석기 시대의 양주 지역이 강자갈 문화와 흑요석 문화가 만나는 접점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양주의 선사 문화를 이해하는 대단히 중요한 관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선사 시대의 유적, 유물의 발견이 많지 않아 양주의 선사 시대를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미 있는 유적과 유물의 추가 발견이 필요한 실정이다.
양주 지역의 청동기 유적은 현재 모두 14곳이 조사 보고되었다. 이 중 상당수는 고인돌[8곳]이며 선돌[立石] 1곳과 기타 관련 유물 산포지로 구성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당시의 양주가 마한의 북변을 이루고 있었다는 점에서 양주에 나타나는 고인돌이 남방계 개석식이라는 사실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양주의 인근 지역인 포천의 자작리, 연천의 통현리, 강화군 하점면 등의 고인돌이 모두 북방계 탁자식이라는 점에서 양주는 남북의 고인돌 분화가 접점을 이루는 접경 지대라는 사실이 양주의 청동기 문화를 이해하는 한 관점이 될 것이다.
[철기 시대]
양주 지역에서 발굴된 철기 시대의 유적으로는 양주시 옥정동에서 2곳, 남면 상수리의 유물 산포지 1곳으로 모두 3곳의 유적이 확인되고 있고, 수습되는 유물은 모두 토기 조각들이다. 옥정동 유물 산포지1에서는 황갈색, 적갈색, 회질의 연질, 경질 토기와 간석기 등이 출토되었고, 옥정동 유물 산포지2에서도 역시 회색 연질 토기와 소뿔 모양 손잡이, 구멍무늬 토기[공열 토기] 등이 수습되었다. 상수리 유물 산포지에서는 갈색의 연질 토기와 회갈색의 연질 토기가 수습되었다.
경기도 양주시에서 철기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유적은 옥정동 야철지 유적이다. 야철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다량의 슬래그가 비교적 넓은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어 이곳이 야철지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인근에서 철산이나 철광 채굴에 관련된 흔적이 없어 철 생산과 관련된 전반적인 구조를 확인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양주 지역의 초기 철기 문화를 이해하는 대단히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