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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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蘇萊山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하패리|용암리|선암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영각 |
전구간 | 소래산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하패리~선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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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소재지 | 소래산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하패리 |
해당 지역 소재지 | 소래산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
해당 지역 소재지 | 소래산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 |
성격 | 산 |
높이 | 228.8m |
[정의]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용암리·하패리에 걸쳐 있는 산.
[명칭 유래]
소래산(蘇萊山)이라는 이름이 생긴 배경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 중에서 제일 그럴듯한 전설은 송라, 즉 소나무겨우살이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이다. 소나무겨우살이는 소나무에 기생하는 식물로 한방에서는 이뇨제 및 거담제로 사용하며 결핵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원래 이 산에는 소나무가 많았으며 소나무에 송라가 많았다고 한다. 따라서 송라에서 소라를 거쳐 소래로 변하여 지명으로 정착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와 함께 조선 시대에 크게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게 되자 마을 사람들이 산에서 나는 송피(松皮)[소나무 껍질]와 송라를 따다가 목숨을 부지했으며 이 송라로부터 소래라는 지명이 유래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 이야기이다. 다음은 산의 생김새가 마치 여승들이 쓰는 모자인 송낙을 닮았다 해서 나온 이름이라고 한다. 송낙은 송라로 만든 모자로서 송라립(松蘿笠)이라고도 한다. 이 역시 송라가 소라를 거쳐 소래로 변하였다고 본다.
소래산이라는 지명은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1506년(연산군 12) 2월 2일 조에 처음 등장한다. 그 이전에는 『세종실록(世宗實錄)』 1420년(세종 2) 3월 12일 기록에 상왕[태종(太宗)]과 세종(世宗)이 소라리(所羅里)에서 사냥을 구경했다고 하며 『세종실록』 1437년(세종 19) 10월 2일 기록에는 세종이 소라이(所羅伊)에서 사냥을 했다는 기사가 있어 ‘소라’라는 지명이 일찍부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도 나타나며, 그 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와 각종 지리서 및 『경기도읍지(京畿道邑誌)』와 같은 기록에 소래산·소라산(蘇羅山)·소라산(所羅山)·송라산(松蘿山) 등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자연 환경]
칠봉산에서 양주시 남단까지 동쪽으로 천보산맥이 이어지면서 양주시의 울타리가 되고 있다. 평지형 분지인 양주시 백석읍 및 은현면 일대를 지나 북쪽으로 신천이 따라가고 있다. 신천은 양주시와 동두천시를 동서로 나누며 달린다. 신천은 덕계천이 만나는 곳에서 소래산을 휘감아 돌며 양주시 은현면 동쪽 끝에서 북쪽으로 돌아든다. 동두천 시내를 가르며 지나가는 신천 서편으로 소래산이 자리 잡고 있다. 소래산 및 아래에 있는 소래마을[소래동] 앞을 남북 방향으로 신천이 흐르고 있다. 소래교 건너에는 신천을 따라 국도 3호선인 평화로와 경원선이 지나간다.
[현황]
소래산의 높이는 228.8m이며 정상은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 산2번지, 용암리 산14-1번지, 하패리 산136-1번지가 만나는 곳에 있다. 양주시 봉양동에서 동두천시 송내동으로 넘어가는 봉양고가차로에서 서편 신천 건너로 보이는 야트막한 야산이 소래산이다. 신천을 경계로 동쪽의 동두천시와 서쪽의 양주시 은현면이 마주하고 있어서 동두천시 주민들의 나들이 및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소래산과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80번지 일대인 소래마을은 예전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 주변에 음식점이 생기고 여기저기 공장이 들어서면서 전원의 모습은 사라지고 매우 어수선한 분위기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