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2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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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蓮谷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도남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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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2001년 10월 1일 -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에서 양주군 백석읍 연곡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2003년 10월 19일 - 양주군 백석읍 연곡리에서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로 개편 |
법정리 | 연곡리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 |
성격 | 법정리 |
가구수 | 324가구 |
인구(남,여) | 807명[남자 451명, 여자 356명] |
[정의]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연곡리(蓮谷里)는 연평리(蓮坪里)와 난곡리(蘭谷里)에서 ‘연’자와 ‘곡’자를 따서 지었다. 연평리라는 땅 이름은 연못이 있는 들판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유래하였고, 난곡리라는 땅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에 있었던 피난말에서 변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연곡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개편 이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대한 제국 시기까지만 해도 이곳은 대부분 백석면의 해유리(蟹踰里)·연평리·난곡리에 속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해유리·연평리·난곡리 일부를 병합하여 연곡리라 하였다. 2001년 10월 1일 백석면이 백석읍으로 승격되면서 양주군 백석읍 연곡리가 되었다가, 2003년 10월 19일 양주군이 양주시로 승격되면서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자연 환경]
북쪽과 서쪽에 산지가 있고, 중앙의 연곡저수지를 중심으로 거의 대부분 평야 지대이다.
[현황]
연곡리는 양주시 백석읍의 서북쪽에 위치한다. 2010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총 324가구에 807명[남자 451명, 여자 35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연곡1리와 연곡2리의 2개 리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 마을로는 게너미[해유]·골말·난곡[피난말]·능무랭이·도축골[도치곡(道治谷)]·두레마을·매장거리·벌말·상장미·연평들·웃말·잼말·정터 등이 있다. 현재 연곡리에는 임진왜란 당시 육지 전투 최초의 승전지인 해유령을 비롯하여 조선 왕조 창건의 일등공신인 조영무(趙英茂)의 별묘(別廟) 등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있다. 연곡리는 조용하고 정감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동쪽은 양주시 백석읍 오산리 및 광적면 광석리, 서쪽은 광적면 비암리, 남쪽은 백석읍 홍죽리, 북쪽은 광적면 우고리와 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