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363 |
---|---|
한자 | 左神策軍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한정수 |
[정의]
고려 전기 경기도 양주에 설치된 절도사(節度使) 소속의 군대.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는 983년(성종 2)에 12목을 두었는데, 현 양주시는 당시 최고 행정 단위의 하나인 양주목에 속하였다. 고려는 993년 거란의 1차 침입을 당한 후 995년(성종 14)에 전쟁에 대비하고 지방 호족 세력 통제와 중앙 집권을 위해 절도사 체제로 지방 행정 제도를 개편하였다.
[관련 기록]
『고려사』[권56, 지10 지리 양광도 남경유수관 양주]에 “고려 초에 또 고쳐 양주로 삼았고 성종 14년에 비로소 10도를 정하였는데, 12주절도사를 두면서 이름을 좌신책군이라 하고 해주와 더불어 좌우2보를 삼았다. 관내도(關內道)에 소속시켰다가 현종 3년에 2보(二輔)와 12절도를 폐하고 안무사(安撫使)로 고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군사적 성격을 강화하여 12목제를 12절도사제로 개편하였는데 이때 양주 지역은 광주, 황주, 해주와 함께 관내도로 편제되었다. 동시에 군정적 행정을 위해 12주의 목을 모두 군으로 개편하는 작업을 시도하였고, 양주의 군호는 좌신책군(左神策軍)이 되었다. 해주의 우신책군(右神策軍)과 더불어 좌우2보(左右二輔)로서 중앙인 개경을 보좌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변천]
1005년(목종 8)에 도단련사·단련사·자사 등이 혁파되는 등 좌신책군을 포함한 절도사 체제가 약화되었으나, 12군은 군사적인 성격이 강해 도호부와 함께 존속하였다. 하지만 1012년(현종 3) 절도사가 혁파됨에 따라 행정적인 지방 관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양주절도사는 안무사(安撫使)로 개편되고, 좌신책군 등은 지방군 조직에 흡수되어 광군(光軍)과 함께 고려 주현군(州縣軍)에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고려 초 지방 세력 통제와 중앙 집권 강화를 위해 채택한 제도에 따라 양주가 고려의 수도 개경을 보익하는 중요한 축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