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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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石崔命昌墓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덕계동 산64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도남 |
조성 시기/일시 | 1537년 - 비석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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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466년 - 최명창 출생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536년 - 최명창 사망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2년 4월 8일 - 송석최명창묘역 경기도 기념물 제178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송석최명창묘역 경기도 기념물 재지정 |
현 소재지 | 송석최명창묘역 - 경기도 양주시 덕계동 산64[좌표: N37° 49′ 30.8118″, E127° 02′ 23.9064″] |
성격 | 능묘|묘|신도비|묘역 |
양식 | 쌍분 |
관련 인물 | 최명창(崔命昌)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기도 기념물 |
[정의]
경기도 양주시 덕계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최명창(崔命昌)의 묘와 신도비.
[개설]
최명창[1466~1536]의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여신(汝愼), 호는 송석(松石)이다. 할아버지는 최유(崔濡)이고, 아버지는 최철손(崔鐵孫)이다. 1504년(연산군 10) 문과에 급제하였고, 함경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위치]
국도 3호선 평화로에서 양주시 덕계동 덕계저수지 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도락산이 나타나는데, 송석최명창묘역(松石崔命昌墓域)은 도락산 서쪽 산자락에 위치한다.
[형태]
묘는 쌍분(雙墳)으로, 왼쪽이 최명창, 오른쪽이 정부인 단양 우씨의 묘이다. 혼유석(魂遊石)·상석(床石)·향로석(香爐石)·동자석(童子石)·문인석(文人石) 등의 옛 석물을 갖추었다. 좌향은 동향이다. 묘표는 2기로 모두 이수형(螭首形)이다. 왼쪽 비석의 규모는 이수가 너비 53㎝, 두께 20㎝, 높이 34㎝이고, 비석이 너비 47㎝, 두께 16㎝, 높이 75㎝이며, 비석 받침이 너비 77㎝, 두께 46㎝, 높이 36㎝이다. 오른쪽 비석의 규모는 이수가 너비 54㎝, 두께 22㎝, 높이 34㎝이며, 비석이 너비 46.5㎝, 두께 16㎝, 높이 75㎝이고, 비석 받침이 너비 75㎝, 두께 47㎝, 높이 37㎝이다. 동자석은 손에 꽃을 들고 고개를 묘소 바깥쪽으로 돌리고 있는 매우 특수한 형태이다. 규모는 총 높이 88㎝이다. 문인석은 복두 공복(幞頭公服)을 착용하였고, 총 높이는 194㎝이다.
한편 묘소 아래에 있는 최명창 신도비는 옥개형(屋蓋形)이며, 2면 비이다. 규모는 옥개석이 너비 100㎝, 두께 58㎝, 높이 40㎝이며, 비석이 너비 118㎝, 두께 18㎝, 높이 184㎝이고, 비석 받침이 너비 97㎝, 두께 59㎝, 높이 42㎝이다. 신도비의 왼쪽에는 복두 공복을 착용한 문인석 한 쌍이 신도비를 바라보며 서 있다.
[금석문]
왼쪽 비석 앞면에는 ‘가선대부 예조 참판 겸 동지경연사 오위도총부 부총관 최공지묘(嘉善大夫禮曺參判兼同知經筵事五衛都摠府副摠管崔公之墓)’라 새겼다. 비석이 세워진 연대는 1537년(중종 32)이다. 오른쪽 비석 앞면에는 ‘정부인 단양 우씨지묘(貞夫人端陽禹氏之墓)’라 새겼으며, 역시 비석이 세워진 연대는 1537년이다.
최명창 신도비의 전액은 ‘송석공 묘비명(松石公墓碑銘)’이고, 비제는 ‘유명 조선국 가선대부 □□□□ 겸 동지경연사 오위도총부 부총관 최공신도비명 병서(有明朝鮮國嘉善大夫□□□□兼同知經筵事五衛都摠府副摠管崔公神道碑銘幷序)’이다. 비문은 의정부 우참찬 김안국(金安國)[1478~1543]이 지었으며, 홍문관 저작 김노가 쓰고, 사간원 사간 임필형(任弼亨)이 전을 썼다. 비석이 세워진 연대는 ‘황명 가정 십육년 정유 시월일(皇明嘉靖十六年丁酉十月日)’이라 써 놓아 1537년임을 알 수 있다.
[현황]
2002년 4월 8일 경기도 기념물 제17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기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묘소로 들어가는 입구 아래에 최명창 신도비가 자리하고 있으며, 묘소 위에는 최명창의 아버지 최철손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송석최명창묘역은 잘 정비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손에 꽃을 들고 고개를 묘소 바깥쪽으로 돌리고 있는 매우 특수한 형태의 동자석은 다른 묘역의 동자석과 두드러진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어, 조선 전기 능묘 석물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