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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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光先生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 산90-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도남 |
조성 시기/일시 | 1628년 - 이수광선생묘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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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 시기/일시 | 1632년 - 이수광 신도비 조성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563년 - 이수광 출생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628년 - 이수광 사망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8년 10월 10일 - 이수광선생묘 경기도 기념물 제49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이수광선생묘 경기도 기념물 재지정 |
현 소재지 | 이수광선생묘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 산90-1[좌표: N37° 40′ 22.388″, E126° 55′ 09.4947″] |
성격 | 능묘|묘 |
양식 | 단분 합장 |
관련 인물 | 이수광(李수光) |
소유자 | 사유 |
관리자 | 이희태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기도 기념물 |
[정의]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수광(李수光)의 묘.
[개설]
이수광[1563~1628]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峰)이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왕래하면서 마테오리치(Matteo Ricci)[1552~1610]의 『천주실의(天主實義)』 등 여러 서양 서적을 통하여 새로운 학문을 연구하고 개척하였다. 1614년(광해군 6)에는 『지봉유설(芝峯類說)』을 간행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천주교와 서양 문물을 소개함으로써 실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위치]
이수광선생묘(李-光先生墓)는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에서 고양시 효자동으로 넘어가는 지방도 371호선 길가에 위치한다.
[형태]
묘는 단분 합장이고, 묘표(墓表)·혼유석(魂遊石)·상석(床石)·향로석(香爐石)·동자석(童子石)·망주석(望柱石) 등을 갖추었다. 좌향은 북서향이며, 봉분에는 앞면에 호석(護石) 1기만이 잔존해 있다. 묘표는 원수형(圓首形) 1면 비로, 총탄의 흔적이 많아 비문 판독이 어려운 편이다. 규모는 비석이 너비 57㎝, 두께 195㎝, 높이 134㎝이다.
동자석은 쌍계를 하였고, 규모는 총 높이 108㎝이다. 망주석은 운각(雲角)에 여의두문(如意頭紋), 그 아래 염의(簾衣)[구슬발]를 조각하였으며, 몸돌에는 세호(細虎)를 양각하였다. 규모는 총 높이 163㎝이다. 한편 이수광 신도비는 원수형 1면 비로, 규모는 비석이 너비 113㎝, 두께 32㎝, 높이 246㎝이고, 비좌가 너비 181㎝, 두께 95㎝, 높이 54㎝이다.
[금석문]
묘표 비석 앞면에는 ‘증 의정부 영의정 □이조판서 □□□□□광묘 증 정경부인 안동 김씨 부좌(贈議政府領議政□吏曹判書□□□□□光墓贈貞敬夫人安東金氏祔左)’라 새겼다.
신도비의 전액은 ‘증 의정부 영의정 이문간공 신도비명(贈議政府領議政李文簡公神道碑銘)’이고, 비제는 ‘유명 조선국 증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겸 영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사 세자사 행정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경연춘추관사 동지성균관사 홍문관 제학 증 시 문간 이공 신도비명 병서(有明朝鮮國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世子師行正憲大夫吏曹判書兼知經筵春秋館事同知成均館事弘文館提學贈諡文簡李公神道碑銘幷序)’이다.
비문은 좌의정 이정구(李廷龜)가 지었고, 병조 참판 오준(吳竣)이 쓰고,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이 전을 썼다. 비석이 세워진 연대는 1632년(인조 10)이다. 신도비에는 이수광의 시호인 ‘문간(文簡)’이 붙여진 이유에 대해 “배움에 부지런하고 묻기를 좋아하는 것을 ‘문(文)’이라 하고, 한결같이 덕을 베풂에 게을리하지 않는 것을 ‘간(簡)’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황]
1978년 10월 10일 경기도 기념물 제4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기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관리자는 이희태로 되어 있다. 이수광선생묘는 아버지인 이희검(李希儉)과 아들 이성구(李聖求)의 묘와 나란히 위치하고 있는데, 위로부터 이희검, 이수광, 이성구의 순으로 놓여 있다. 이수광선생묘의 초입에는 세 사람의 신도비가 비각 안에 놓여 있다.
[의의와 평가]
이수광은 조선 후기 실학 태동기에 서양의 문물을 소개하고 백과사전적인 책자 『지봉유설(芝峰類說)』를 펴낸 실학자이다. 이수광선생묘는 조선 후기 봉분 조성 과정과 석물의 형태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실학과 관련된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