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7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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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城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김선주 |
소재지 | 양주 대모산성 - 경기도 양주시 어둔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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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양주 대모산성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 |
소재지 | 비석거리 토성 - 경기도 양주시 남방동 산138-5임 |
[정의]
경기도 양주 지역에 있는 적의 공격에 대비하여 흙이나 돌로 구축한 전통 시대 방어 시설의 하나.
[개설]
성곽은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방어 시설로 주로 흙이나 돌로 구축하였다. 그 모양을 보면, 지형적인 조건과 지역적 특수성 때문에 다양한 성곽이 발달하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산지가 많아 특히 산성(山城)이 발달하였다. 따라서 네모꼴보다는 자연적인 포곡선(包谷線)을 형성하여 부정원형(不整圓形)이 많다. 이들 성곽은 여러 개의 계곡을 둘러싸고 설치되기도 하고 산등성이의 구불거리는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축성에 필요한 각종 재료는 부근의 산돌을 깨어 이용하거나, 돌이 없는 산은 흙을 깎아 성벽을 구성하였다.
성곽의 구조는 부대시설을 배치하는 데 있어 산의 능선을 최대로 활용하였다. 수문과 성문을 계곡의 중앙과 그 좌우에 설치하여 통행을 편리하게 하였으며, S자형으로 굽이 드나들도록 한 것이다. 그 반대로 암문은 산등성이로 통하는 능선부의 바로 아래 비탈진 부분을 이용하여 설치하였다.
치성(雉城)은 산성의 경우 비교적 평탄한 지형에 성벽이 곧게 뻗은 곳에서 산등성이 쪽에 배치되었으며 대부분 곡성을 이룬다. 옹성(甕城)은 가파른 계곡 경사면일 경우 대부분 곡성으로 대치되며, 대지일 경우 ㄱ자형으로 되어 있다. 망루는 가장 높은 정상부, 혹은 산등성이와 연결되는 각부(角部)에 위치한다. 대략 3세기에서 4세기까지는 이러한 산성 중심으로 입보(入保)하는 형태가 한국의 전형적인 성곽제(城郭制)로 정착된 것으로 추정된다.
[분포와 특징]
양주의 성곽으로는 양주 대모산성, 비석거리 토성과 함께 많은 보루들이 있다. 삼국 시대 양주 일대 성곽 유적은 주로 보루 등 관방 유적이었으며 평지 길목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해발 200~550m 능선상의 봉우리에 위치하였다. 각각의 보루는 작으나 서로 연결되어 거대한 방어 기지를 구성하였다. 1998년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의 조사를 통해 27개소의 보루 관방 유적이 확인되었다.
경기도 양주시 어둔동과 백석읍 방성리 일대에 위치한 양주 대모산성은 매초성(買肖城)[또는 매소성]으로 추정되기도 하는 성으로 여러 차례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그 결과 많은 양의 신라 토기와 기와가 출토되었고, 백제 토기가 나오기도 하였다. 경기도 양주시 남방동에 위치한 비석거리 토성 역시도 매초성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 추정되지만 관련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