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7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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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楊州 趙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서동일 |
[정의]
조잠(趙岑)을 시조로 하고 양주를 본관으로 하는 경기도 양주시 세거 성씨.
[연원]
양주 조씨의 시조는 조잠으로, 고려 시대에 호장을 지내고 후일 판중추부사에 추증되었다. 관련 문헌이 남아 있지 않아 선대가 어떠한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조잠은 고려 시대 사람인 조군우(趙君祐)의 손자이며, 조경질(趙景質)의 아들이라고 한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때 피해를 입고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했다. 그 후 후손들이 다시 번창해 가문을 일으켰다고 한다. 3세손 조의(趙誼), 4세손 조계생(趙啓生)[?~1438] 등의 묘가 양주[현 경기도 의정부시 낙양동 590]에 있고, 계유정난 때 화를 입고 죽은 조계생의 아들 조극관(趙克寬)·조수량(趙遂良) 등의 묘도 양주로 옮겨진 것으로 보아 후손들이 오랫동안 양주를 세거지로 삼고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정평공파(靖平公派)의 조극관·조수량 형제는 계유정난 때 김종직(金宗直) 일파로 몰려 죽음을 당해 종중의 쇠퇴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반면 문강공파(文剛公派)의 조선(趙璿)은 조선 태종의 사위가 되었고, 조근(趙瑾)은 세조 때 강원도 관찰사를 지냈다. 파(派)는 4세손 대에서 네 개 파로 나뉘어, 의정부 좌참찬을 지낸 조계생을 파시조로 하는 정평공파, 강화부사를 지낸 조유중(趙惟中)의 강화공파(江華公派), 병조판서를 지낸 조말생(趙末生)의 문강공파, 보문각 제학을 지낸 조종생(趙從生)의 제학공파(提學公派)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인물로는 조말생, 조사수(趙士秀), 조존성(趙存性), 조사석(趙師錫), 조계원(趙啓遠), 조태억(趙泰億), 조태채(趙泰采), 조병세(趙秉世), 장렬왕후(莊烈王后)[인조의 계비] 등이 있다.
[현황]
양주 조씨 후손들은 주로 경기도 가평, 전라북도 김제 등에 세거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인구는 1985년 23,211명, 2000년 7,437호 23,942명이다. 2000년 현재 경기도에 거주하는 양주 조씨는 1831가구 5981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