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8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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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順朋 |
이칭/별칭 | 이령(耳齡),성재(省齋),을사삼간(乙巳三奸)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창래 |
출생 시기/일시 | 1484년 - 정순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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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04년 - 별시문과 병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16년 - 장령 |
활동 시기/일시 | 1518년 - 경연 강독관 |
활동 시기/일시 | 1519년 - 좌부승지, 충청도 관찰사, 형조 참의, 전주부 윤 |
활동 시기/일시 | 1521년 - 관직 삭탈 |
활동 시기/일시 | 1539년 - 공조 참판 |
활동 시기/일시 | 1542년 - 형조 판서, 호조 판서 |
활동 시기/일시 | 1544년 - 의정부 우참찬, 내의원 제조 |
활동 시기/일시 | 1545년 - 대사헌, 지중추부사 |
활동 시기/일시 | 1545년 - 온양부원군, 의정부 우찬성 겸 지경연사, 우의정 |
활동 시기/일시 | 1548년 - 정순붕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785년 - 묘표 건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578년 - 관직과 훈작 삭탈됨 |
묘소|단소 | 온양 정씨 묘역 - 경기도 양주시 고덕로 108-60 산92 시장골[산북동 1]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온양 |
대표 관직 | 우의정 |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온양. 자는 이령(耳齡), 호는 성재(省齋). 할아버지는 지평 정충기(鄭忠基)이고, 아버지는 헌납 정탁(鄭鐸)이다. 어머니는 성주 도씨(星州都氏)이며, 부인은 완산 이씨로 봉양부 정(鳳陽副正) 이종남(李終南)의 딸이다. 형은 형조판서 정백붕(鄭百朋)이다. 슬하에 아들 다섯을 두었는데, 정렴(鄭石+廉)은 포천 현감을 지냈다.
[활동 사항]
정순붕(鄭順朋)[1484~1548]은 1504년(연산군 10)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림과 교유하였다. 1516년(중종 11) 조광조(趙光祖), 박상(朴祥), 김정(金淨) 등과 더불어 사유(師儒)로 선발되었고, 이조판서 송천희(宋千喜)의 천거로 장령에 임명되었다. 1518년(중종 13) 김정국(金正國), 신광한(申光漢) 등과 함께 경연 강독관(經筵講讀官)으로 뽑혔다. 이듬해 좌부승지, 충청도 관찰사를 지내고 형조 참의에 올랐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로 사림이 쫓겨날 때, 정순붕도 연루되어 전주부윤으로 좌천되었다가 이듬해 파면되고 1521년(중종 16) 삭탈 관직되었다.
1531년(중종 26) 이후 영의정 정광필(鄭光弼) 등에 의하여 등용이 논의되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그 후 김안로(金安老) 세력이 몰락하면서 다시 벼슬에 올랐다. 1539년(중종 34) 공조 참판이 되었고, 사신으로 명나라에 갔다 오면서 『황명정요(皇明政要)』, 『요동지(遼東志)』 6권을 구해 임금에게 바쳤다. 형조 참판, 강원도 관찰사를 지냈고 이듬해 공조 참판, 한성부 우윤으로 옮겼다.
1542년(중종 37) 형조판서에 이어 호조 판서가 되어 오랫동안 재정을 담당하였다. 1544년(중종 39) 의정부 우참찬으로 내의원 제조(內醫院提調)를 겸한 후 대사헌이 되었다. 그해 인종 즉위 후 장경왕후(章敬王后)의 오빠인 윤임(尹任)[대윤] 득세하면서 의정부 우참찬에서 지중추부사로 벼슬이 떨어졌다. 1545년 명종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여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자 왕후의 동생인 윤원형(尹元衡)[소윤] 일파가 세력을 잡았다.
소윤은 을사사화를 일으켜 대윤의 우두머리인 윤임과 세 아들을 죽이고 수많은 관리를 숙청하였는데, 정순붕도 여기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 이에 사람들은 그를 간흉이라고 몰래 비난하며 임백령(林百齡), 정언각(鄭彦慤)과 함께 을사삼간(乙巳三奸)으로 칭하였다. 정순붕은 을사사화를 주도한 공로로 보익공신(保翼功臣) 1등에 책록되고 온양부원군(溫陽府院君)에 봉해졌다. 벼슬도 의정부 우찬성 겸 지경연사(知經筵事)에 이어 우의정에 이르렀다.
정순붕은 을사사화 때 죽임을 당한 좌의정 유관(柳灌)의 가족을 노비로 들여 갑이(甲伊)라는 여종을 첩으로 삼았다. 갑이는 전 주인의 원수를 갚으려고 일부러 정순붕에게 염병[장티푸스]을 옮겨 죽게 했다고 전한다. 1578년(선조 11) 관직과 훈작이 삭탈되었다.
[묘소]
무덤은 경기도 양주시 산북동 온양 정씨 묘역 우측 능선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