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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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에 있는 영천이씨 재실. 영천이씨 이구(李鳩)는 고려 말 절의자 남곡(南谷) 이석지(李釋之)의 후손이다. 구체적으로는 남곡공파(南谷公派)의 지파인 서파공파(西坡公派)의 후손이다. 이구는 임진왜란 때 양산에서 이수생(李秀生)·최흥국(崔興國) 등과 창의하여 의병 활동을 하다가, 왜적의 포로가 되어 송담(松潭) 백수회(白受繪)[1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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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선비. 본관은 부여(扶餘). 자는 진언(震彦), 호는 송은(松隱). 송담(松潭) 백수회의 후손이다. 1864년(고종 1) 호위영(護衛營)에서 타어평(鼉魚坪[메기들]에 강제로 세금을 부과하여 민폐가 극심해지자 백동호(白東浩)는 자신의 안일을 돌보지 않고 감영(監營)에 정소(呈訴)하여 세금을 면제받게 하였다. 또한 후학을 양성하는 데 앞장섰고, 향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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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양산(梁山). 자는 여빈(汝彬), 호는 송담(松潭). 원래 부여(扶餘)백씨이다. 백수회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당시 19세였으며, 재실에서 독서를 하다가 왜인에게 붙잡혀 일본에 가서 9년 만에 돌아왔다. 일본에서의 포로 시절 충절과 기개를 지킨 것으로 유명하며 이때 지은 가사나 한시들이 지금도 전해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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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에 있는 조선 말기에 조성된 송담 백수회의 비. 양산의 이름난 유학자 송담 백수회 비각이다. 1879년(고종 16)에 건립되었다. 석비로 비신의 크기는 높이 109㎝, 폭 59㎝, 두께 30㎝이다. 비의 앞면에는 ‘송담백공선생휘수회정려(松潭白公先生諱受繪旌閭)’라는 글자가 예서체로 쓰여 있다. 뒷면에는 ‘숭정기원후오년기묘오월입(崇禎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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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선비 본관은 부여(扶餘). 자는 붕지(鵬之). 양산의 대표적 인물 중 한 명인 송담(松潭) 백수회(白受繪)의 후손이다. 아들은 백사정(白思正), 손자는 백동휴(白東畦)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수직조(壽職條)는 백유익에 대해서 “타고난 성품이 순박하면서 경솔하지 않았고, 자신의 지위를 굳게 지켰던 인물이었다. 선조의 가르침을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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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가촌리의 본마을이라는 뜻에서 본리(本里)라고 한다. 본리마을이 속한 가촌리에 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신라시대 이전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사기곡(寺基谷)의 절터, 옷나무골, 새갓 등에서 삼국시대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다수의 기와 및 토기편들이 출토되었다. 특히 가촌리에서 사람이 처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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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선현제향(先賢祭享)과 교육을 위해 설치된 조선 시대 기관. 1543년(중종 38) 풍기군수 주세붕이 주자가 백록동서원을 건립하여 운영한 것을 본받아 고려 말 학자 안향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하여 경상도 순흥에 백운동서원을 창건한 것이 사립 중등 교육기관인 서원의 효시이다. 그 후 풍기군수로 온 퇴계 이황의 건의로 백운동서원이 소수서원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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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 송담 서원 안에 있는 조선 후기 묘정비. 양산 가촌리 송담사 묘정비는 조선 후기 문신 송담(松潭) 백수회(白受繪)[1574~1642]의 충의를 기리고자 세운 비석이다. 백수회는 19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붙잡혀 포로의 신세가 되었다. 귀환 후 광해군의 난정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1624년(인조 2) 사옹원 참봉에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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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양산읍성터 내에 있던 조선 후기에 세워진 임진왜란의 충의지사 조영규와 백수회의 사우 터. 조영규(趙英圭)는 자가 옥첨(玉瞻), 본관은 직산(稷山)으로, 1554년(명종 9) 무과에 급제하여 1592년(선조 25) 양산군수로 부임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동래성을 사수하다가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과 함께 58세로 순절하였다. 1669년(현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