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04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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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書院 |
영어의미역 | Private Confucian Academy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오인택 |
[정의]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선현제향(先賢祭享)과 교육을 위해 설치된 조선 시대 기관.
[개설]
1543년(중종 38) 풍기군수 주세붕이 주자가 백록동서원을 건립하여 운영한 것을 본받아 고려 말 학자 안향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하여 경상도 순흥에 백운동서원을 창건한 것이 사립 중등 교육기관인 서원의 효시이다. 그 후 풍기군수로 온 퇴계 이황의 건의로 백운동서원이 소수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으며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면서 사림의 교육기관으로서 공인되었고, 이에서 배출된 사림이 중앙 정계에 진출하면서 서원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서원의 성립과 확산 과정은 사림의 정치적 성장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서원은 고려시대부터 별도로 존재하던 선현의 봉사처인 사묘와 교육을 담당하던 강당이 통합되면서 성립하였다. 서원은 사림의 교학 공간일 뿐만 아니라 강학 활동을 통한 향촌 사림의 교제처 구실을 하였다. 이로서 서원은 향촌 사회에 관한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해결하는 사림의 향촌 운영 기구로서의 기능도 하였다.
[변천 및 현황]
조선시대 양산에는 두 개의 서원이 건립되었다. 송담서원과 소노서원이 그것이다. 송담서원은 양산 사족이 송담 백수회를 제향하기 위하여 숙종대에 물금면 가촌리에 세웠으며, 1717년(숙종 43) 사액을 받았다. 백수회는 양산의 사족으로서 임진왜란 때 포로로 잡혀 9년간 왜국에 있다가 송환된 인물인데, 포로로 생활하는 동안 왜국에 회유되지 않고 지킨 충절로 양산 사족에게 널리 알려졌다.
백수회는 인조반정 이후 사옹원 참봉으로 임명되었으며, 후에 찰방을 역임하였다. 1670년(현종 11) 호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송담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정책에 따라 철폐되어 없어지고 터만 남았다. 최근 사림과 백씨 문중의 뜻에 따라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 823-8번지 원래 터에 사우를 세워 제향을 받들고 있다.
소노서원은 양산의 사족이 정호인과 정호의 형제를 제향하기 위하여 상북면 소토리에 세운 사우에서 발전된 서원이다. 정호인과 정호의는 동래정씨 족형제간으로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경주성 전투 등의 전공을 세움으로써 양산 사족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에 양산 사족은 정씨 형제의 우국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1835년(헌종 2)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313-2번지에 소산사라는 이름의 사우를 건립하였다. 1926년에는 양산 사림의 뜻에 따라 사우 옆에 강당을 세워 소산사를 소노서원으로 개칭하였다. 현존 서원 건물은 1985년과 1986년에 걸쳐 기존 건물을 중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