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0134 |
---|---|
한자 | 寺刹 |
영어의미역 | Templ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채상식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불상을 모셔놓고 공적으로 불교신행을 행사하는 장소.
[개설]
양산에는 통도사, 내원사·원효암·홍룡사·신흥사·용화사·미타암·계원사 등 8개의 전통사찰이 있다. 이들 사찰은 국보·보물·지방문화재 등을 소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찰의 창건 연기로 볼 때도 근대 이전에 창건된 중요한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종단별로 보면, 대한불교 조계종에 속한 사찰이 타 종단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현재 통도사를 비롯하여 부속 암자까지 모두 90여 개에 이른다. 특히 통도사에 속한 20여 개의 암자는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위상을 표방할 정도로 종교적·문화적 독창성과 기능을 갖추고 있다. 한편 현재 전통사찰로 지정된 곳은 모두 조계종에 속하며, 이들 외에 조계종의 중요 사찰로는 천불사와 경감암이 있다.
다른 종단 소속의 사찰을 살펴보면, 태고종 소속의 사찰은 춘추원사를 비롯하여 8개이며, 천태종은 양성사를 비롯하여 2개, 법화종은 원효사를 비롯하여 14개, 원효종은 보현사를 비롯하여 3개, 일승종은 용국사를 비롯하여 2개, 법륜종은 성락사를 비롯하여 2개, 임효종은 성불암 1개, 달마선종은 기원정사 1개 등이다.
[현황]
1. 내원사
통도사(通度寺)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하였으며 그 창건설화는 『송고승전(宋高僧傳)』에 전한다. 조선시대에 몇 번의 중수를 거쳐 1898년에 유성(有性)선사가 수선사(修禪社)를 창설하여 절 이름을 내원사로 하였다. 이때 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禪院)이라 이름한 이후 선찰(禪刹)로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경허선사의 법제자인 혜월(慧月)선사가 조실로 주석하면서 운봉선사·향곡선사 등 한국 선종사(禪宗史)의 맥을 잇는 많은 선승을 배출한 도량이 되었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불타게 되자, 비구니 수옥(守玉)의 노력으로 10여 년만에 독립된 비구니 선원으로 새롭게 중창되었다. 현재의 내원사에는 대문채인 소심당, 선방(禪房)인 선해일륜(禪海一輪), 요사채인 정려헌(靜慮軒) 등 10여 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고 암자로는 미타암(彌陀庵), 성불암(成佛庵)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금고(金鼓), 아미타삼존탱, 석조보살좌상 등이 유명하다.
2. 계원사
통도사 말사인 계원사(鷄源寺)의 창건 시기를 알 수 있는 문헌은 전하지 않는다. 대웅전에는 물고기 문양이 그려져 있어 가야불교와의 관련성을 주목하기도 한다. 이를 토대로 가야시대에 처음 세웠다는 구전이 있다. 그러나 초창에 관한 사정은 알 수 없고 조선시대에 없어졌다가 1910년대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암자의 유래와 관련하여 옛날부터 흥미 있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계원사에서 양산시가지를 향해 서서 왼쪽을 바라다보면 가까운 능선 끝에 바위가 보인다. 이 바위 이름이 닭바위이다. 옛날에 계원사 아래 삼동리 마을 사람들이 새벽이면 닭바위 위에서 나는 닭울음소리를 듣고 새벽을 열었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는 그 닭들이 물을 마셨다는 닭우물도 있는데 이곳의 약수는 물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2003년에 요사채 옆의 절개지 작업 도중 신라시대 토기가 다수 출토되었다. 그때 출토된 7점의 완형 토기 등은 현재 국립김해박물관에 보관중이다. 양산 시내에서 가장 가까이 있고 암자 옆으로 중부동 고분군, 북부동 산성으로 향하는 산책로가 닦여 있어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3. 신흥사
주변의 산세와 계곡 등 경관이 빼어난 영축산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신흥사(新興寺)는 통도사의 말사이다. 301년(신라 기림왕 4) 신본(信本)이 창건했다고 하지만 이때는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이므로 신빙성이 없다. 1582년(선조 15) 성순(性淳)이 중창하였고, 임진왜란 때는 승병의 중심지가 되었으나 대광전(大光殿)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에 타 없어졌다.
1801년(순조 1) 호명(浩溟)이 중창하고, 최근 1983년에는 영규(靈圭)가 주지로 부임하여 화엄전과 지장전·칠성각·산신각·천왕문·일주문·국사당·관음전 등을 새로 지었으며, 대광전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주요 유물로는 보물 제1120호인 대광전이 있다. 이 건물은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반영한 조선 중기의 다포식(多包式) 건축물로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외에도 신흥사 남쪽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조선시대의 종형 부도 2기와 서편의 국사당이 있다.
4. 원효암
원효암은 천성산 900m 정상 가까이에 위치하는데, 646년(선덕여왕 15)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청정도량이다. 천성산은 양산시의 진산으로서 옛 이름은 원적산이며 ‘천명의 대중이 득도하여 성인(聖人)이 되었다’라 하여 천성산(千聖山)이라 불리게 되었다.
중국 당나라에서 신라까지 원효를 찾아 온 대중들에게 화엄경을 가르치던 산 정상의 사자봉에는 방석 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이곳 일대를 화엄벌이라 한다. 이렇듯 유서깊은 기도처인 원효암은 바위가 주위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고 청명한 날에는 바다는 물론 멀리 대마도까지 보이는 천혜의 경관을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현재 ‘원효암’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중심 법당을 비롯하여 미륵전·산령각·범종각 등이 있으며, 동편의 석벽에는 ‘마애아미타삼존불(磨崖阿彌陀三尊佛)’이 새겨져 있다. 중심 법당에는 석조약사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근래에 발견된 불상조성기에 따르면 1648년(인조 26)에 조성된 것이다.
5. 미타암
해발 812m의 천성산 8부 능선에 위치한 미타암은 원효대사가 창건한 89암자 중 하나로 통도사의 말사이다. 천성산 화엄벌 동쪽 아래에 있는 미타암에는 천하의 신비를 간직한 보물 제998호 아미타불입상이 자리하고 있다. 미타암은 바로 이 아미타불입상이 모셔진 석굴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도량이다.
기록상 미타암은 『삼국유사(三國遺事)』 피은(避隱) 제8에 전하는 포천산(布川山) 다섯 비구의 설화가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다섯 명의 비구승이 이곳에서 아미타불을 염하며 수도하던 끝에 성불하여 서방정토로 나아갔다는 내용이다. 암자를 뒤로 하고 산길을 따라 가면 내원사에 이르는 등산로가 있는데, 원효암이나 화엄벌과 같은 원효 관련 유적지도 만날 수 있다.
미타암 오른쪽에 있는 석굴에 모셔진 아미타불입상은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은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아미타불이 모셔진 석굴은 여러 면에서 경주 석굴암과 유사하여 인근 주민들은 제3의 석굴암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경허의 법제자 중의 한 사람인 혜월이 이곳에 주석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