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0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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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堤上忠烈碑 |
영어의미역 | Memorial Stone for Bak Jesang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156-3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송봉구 |
성격 | 비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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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석비 |
건립시기/일시 | 1905년 |
관련인물 | 박제상 |
높이 | 145㎝ |
너비 | 54㎝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양산시 강서동 156-3 |
[정의]
조선 말기 경상남도 양산시 강서동 춘추원에 세워진 박제상의 추모비.
[개설]
박제상은 신라 눌지왕 때 사람으로, 왕이 사랑하는 아우 복호와 미사흔이 고구려와 왜에 볼모로 잡혀가 있었다. 왕은 두 아우를 데려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쉽지 않았다. 이에 박제상은 고구려에 가서 고구려왕을 설득해서 복호를 데리고 왔다.
그러나 왜를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미사흔을 빼돌려 본국으로 보낸 후 자신은 남아서 뒤처리를 하였다. 왜왕은 화가 났지만 박제상의 의로움을 높이 평가하여 자기의 신하가 될 것을 강권하면서 고문까지 하였지만 박제상은 끝까지 굽히지 않고 죽음을 택했다.
[건립경위]
박제상 충렬비의 비문에는 건립 경위에 대해, “양산의 인사들이 비록 세대가 멀어졌다고는 하나 공을 사모함을 게을리 하지 않고 다시 그 유적을 복원하려고 1905년에 힘을 합하여 비석을 다듬었으니, 이는 매우 잘한 일이다. 비석이 갖추어져 갈 때 공의 후손 규승이 대대로 강릉에서 살았는데 마침 비석을 새긴 곳에 도착하니 이 또한 기이한 일이다”라고 적혀 있다.
[형태]
비문은 해서체이고, 비신의 크기는 높이 145㎝, 폭 54㎝, 두께 16㎝이다.
[현황]
삼조의열단에서 양산의 유림들이 매년 4월 15일에 제사를 모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