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03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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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岡祠 |
영어음역 | Yonggangsa |
영어의미역 | Yonggangsa Shrine |
이칭/별칭 | 용강단소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용당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송봉구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용당동 탑골 191번지에 에 있던 울산박씨의 사당.
[변천]
용강사는 고려 태조의 후삼국 통일에 공이 많았던 울산박씨 장무공(裝武公) 박윤웅(朴允雄)과 지한주사 박추(朴諏)의 영령을 모시고 향사를 올리는 사당으로 1851년(철종 2)에 건립되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향되었다가 이후 사지에 단을 설치하고 향사하기 위해 중건되었다.
[현황]
용강사에 남아 있는 상량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전하는데, 이를 통해 박윤웅과 박추의 인품을 엿볼 수 있다.
“우리 중시조 흥려 장무공께서는 신라왕의 후손이요, 고려의 좌명공신으로 문왕이 사냥하러 가서 곰도 아니고 이무기도 아닌 어진 신하 여상(呂尙)을 위숫가에서 만나, 매처럼 용감하게 큰 공을 세워 보좌하듯 하였고, 소열황제가 와룡선생을 남양으로 찾아가서 고기와 물처럼 떨어질 수 없는 친분을 맺듯이 하였네. 14대조 지한주사 사은공께서는 고려의 운수가 끝날 때를 즈음하여, 나라를 붙들어 스스로 몸을 바칠 마음으로 「채미가(採薇歌)」로 화답하여,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충성스러운 뜻을 같이하고, 선죽교에 송별시를 남겨 목은 야은과 이름을 함께 날렸다.”
상량문 끝에는 용강사를 건축하는 후손들의 바람이 다음과 같이 드러나 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상량한 후로 산천이 변하지 않고 사당이 길이 보전하여 정령이 의지할 곳이 있고 제사의 예식이 어긋남이 없어서 인륜의 올바른 도리를 서로 권하고 장려하여 충의의 선비가 배출되기를 비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