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4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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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瑾 |
영어음역 | An Geun |
이칭/별칭 | 구암(龜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강식 |
[정의]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주. 호는 구암(龜庵). 조선 중종 때의 문신 안우(安宇)의 손자이다.
[활동사항]
임진왜란 때 선조가 도성을 떠나 피난을 가자, 두 아들 안시명(安諟命)·안이명(安以命)과 조카 안신명(安信命), 사촌 안도수(安導琇)와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병사를 모집하여 양산을 지켰다. 구포산과 금정산에서 왜적을 베었고, 양산시 동면 석산리의 은동석굴을 지켰다.
양산이 함락된 후에는 구원병과 합세하여 왜적을 협공하였다. 1592년 6월 5일 경주 문천(汶川) 회맹에 참가하였다. 금오산 전투, 형산도(兄山島) 전투, 팔공산 전투, 화왕산 전투 등에서 승리하였다. 관직은 주부(主簿)에 이르렀다.
[상훈과 추모]
일문오충(一門五忠) 또는 일문육의(一門六義)로 불리며 원종훈에 기록되었다. 사림에서 소계서원(蘇溪書院)을 지어 향사하고, 춘추원장충단(春秋園獎忠壇)에서도 향례를 받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