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3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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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左森- |
영어의미역 | Jwasam Village |
이칭/별칭 | 횡당마을,사대마을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좌삼리 좌삼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효원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좌삼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유래]
삼리 왼쪽에 있다고 하여 좌삼리라고 하였다고 하며, 또한 마을 왼쪽에 삼림이 울창해 있으므로 좌삼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약 400년 전 이곳에 달성서씨가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좌삼리는 상북면에 속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 당시 좌삼 마을을 옛날에는 횡당 마을이니, 사대 마을이니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렇게 이르는 이가 드물다. 글방자리는 민가로 바뀌어 그 자취를 찾아 볼 수 없으나, 사대는 아직도 고로(古老)들이 소일하는 정자로 남아 있어, 예 모습의 일부나마 더듬어 볼 수 있게 한다. 요즈음은 지나가는 길손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기도 한다. 글방에서 글을 읽다가 지치면 이곳 사대에 나와, 시작(詩作)하면서 문예를 닦고, 활을 쏘며 무예를 닦던 우리 선인들의, 호연지기를 기르고 유유자적 하던 그 기상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곳 사대에서 인근 마을 한량(閑良)들이 모여 활쏘기를 겨루는 향사(鄕射)를 치르고, 주향을 베풀었다하니 이를 통해 이곳 좌삼이 한때나마 번창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삼짇날과 단오절이면, 사대 맞은쪽 좌삼천 개울가에 과녁을 세우고 그 옆에는 씨름터 모래밭, 조송지에 매달은 그넷줄 등이 설치되어 있는데, 여기서 큰바위 구르기등 청소년들의 힘 겨루기도 하였다. 달밤이면 술래잡기로 밤이 지새는 줄도 모르고 뛰놀다 허둥지둥 개울가 웅덩이에 뛰어, 들어 땀을 씻고 각기 집으로 가서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꿈같았던 이곳은 요즘말로는 체육공원이라 할 수 있는데, 지금은 모두 농경지로 변해 버렸다. 글방은 마을 문화 창달의 선봉이 되어 동네의 어린이나 행객들의, 여사(旅舍)로도 쓰이고 거래의 거간객주 노릇도 하였다고 한다. 때로는 향약제정이나 불륜의 규탄 또는 징계 장소로도 이용 되었다고도 한다. 훈장은 타지에서 초빙하여 의식주를 부담하고, 춘추로 보수를 치렀지만 학생 수가 적어 경영 수지에 맞지 않아, 문중 인사가 자원 봉사로 석계에 신식 교육기관인 소학교가 생길 때까지 계속되었다.
[자연환경]
마을 앞으로는 북서쪽의 내석리에서 내려온 물이 내석천이 되어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으며, 하류 상삼리에서 양산천으로 흘러들고 있다. 국도 35호선을 타고 통도사 방면으로 가다, 석계리의 삼계교를 건너면 상삼마을이 나온다. 상삼마을을 지나면 안쪽마을이 좌삼 마을이다.
[현황]
상북면의 중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2007년 12월 31일 현재 총 163세대에 39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한성아파트 맞은편에 있는 삼계교를 건너 상삼마을을 지나면 좌삼마을이다. 주요 지명으로는 딱골·사대·장군바우·용방우·서당갓·사뱃소 등이 있다.
좌삼마을에 있는 용암은 절골 자직천의 한가운데에 있는데, 모양이 머리는 용과 같고 꼬리는 뱀과 같으며, 바위 전체가 비늘무늬로 주름져 있어 멀리서 보아도 번쩍 거려 용암(龍岩)이라 한다. 가뭄이 계속되는 해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기원을 드리고 나면 2~3일 내에 비가 온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옛날에는 좌삼마을과 인근 마을의 부녀자들이 매년 정월 초하루와 대보름달이 떠오를 무렵 여기서 일 년의 안가태평을 빌고, 소원을 기원하는 용왕제를 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주요 기관 및 시설로는 좌삼초등학교, 좌삼재, 마을회관 등이 있다. 남북 방향으로 지나는 국도 35호선 삼계교에서 서쪽으로 난 지방도 1028호선을 이용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