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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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佛敎 |
영어공식명칭 | Buddhism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병선 |
[정의]
고대부터 현대까지 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며 수행하는 종교.
[개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공인된 시기는 삼국시대이다. 372년(소수림왕 2) 고구려에서 처음 공인하였으며, 백제는 384년(침류왕 1), 신라는 가장 늦은 527년(법흥왕 14)에 공인하였다. 영주 지역에 본격적으로 불교가 보급된 시기는 통일신라시대로 보이며, 기록상으로는 669년(문무왕 9) 영전사(靈田寺)가 가장 먼저 창건된 것으로 나타난다. 이후 소백산을 중심으로 영주 지역의 사찰 건립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지만,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많은 사찰이 폐사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세기 말엽부터 억불정책이 완화되면서 다시 사찰 건립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2015년 기준 영주 지역 사찰 수는 104개소이며, 종단 수는 20여 개로 대한불교조계종(曹溪宗)이 40% 정도 차지한다. 이들 사찰 가운데 전통사찰은 부석사(浮石寺)를 비롯해 9개이다. 영주 지역의 불교 관련 지정문화재는 국보 6점, 보물 14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2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0점이 있다.
[영주 지역의 불교 전래]
영주 지역의 불교 전래 과정을 언급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삼국시대 신라와 고구려가 불교를 수용하고 적극적인 불사를 진행하면서 중앙집권적 고대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던 무렵, 영주 지역은 두 나라의 접경 지역이었음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또 삼국시대 영주는 교통의 중심지인 동시에 군사적 요충지로서, 한때 영주 지역은 고구려의 영토였다. 영주 지역에는 삼국시대에 불교가 전파된 기록이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그렇지만,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 당시 고구려 불교사상을 이끌던 보덕(普德)에게 열반경(涅槃經)과 방등경(方等經)을 배웠고, 통일신라시대의 신라 불교에 고구려 불교사상이 가미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영주 지역의 초기 불교는 고구려 불교문화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영주 지역에서 본격적인 불교 전래가 이루어진 시기는 통일신라시대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기록에 따르면, 영주 지역에서 가장 먼저 창건된 사찰은 영전사이다. 영전사는 본래 영주시 풍기읍 욱금리에 있던 사찰로 669년 의상이 창건했다고 하나, 이후 사적은 전하지 않는다. 이후 영주 지역에서는 소백산 일대를 중심으로 많은 사찰이 건립되기 시작하였다.
[영주 지역의 불교 발전]
1. 통일신라시대
영전사 창건 이후 영주 지역의 사찰 창건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영전사 다음으로 창건된 사찰이 부석사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의하면 부석사는 의상이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676년(문무왕 16)에 창건하고, 이곳에서 화엄종(華嚴宗)을 널리 전했다고 한다. 『송고승전(宋高僧傳)』에는 의상과 선묘(善妙), 부석사 창건에 관한 연기설화(緣起說話)가 자세히 적혀 있다. 고려시대에는 선달사(善達寺) 또는 흥교사(興敎寺)라 불렀는데, ‘선달’이란 선돌의 음역으로 ‘부석’의 향음으로 보기도 한다. 의상을 ‘부석존자’라 하고 의상이 창시한 화엄종을 ‘부석종’이라 하는 것은 ‘부석사’라는 절의 명칭에서 유래된 것이다.
통일신라시대 영주 지역에서 창건된 사찰은 영전사·부석사·비로사(毘盧寺)·초암사(草庵寺)·성혈사(聖穴寺)·진월사(陳月寺)·흑석사(黑石寺)·유석사(留石寺)·희방사(喜方寺)·백룡사(白龍寺)·문수사(文殊寺)·안양원(安養院) 등 12개소이다. 이 가운데 창건 시기가 확실히 밝혀진 사찰은 영전사와 부석사를 비롯해, 680년(문무왕 20) 비로사, 694년(효소왕 3) 유석사, 861년(경문왕 1) 희방사이다. 이들 사찰 가운데 의상이 창건했다고 알려진 사찰만 8개소로 영전사·부석사·비로사·초암사·성혈사·진월사·흑석사·문수사 등이다. 따라서 영주 지역의 사찰 창건과 불교 전파는 통일신라시대에 의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의상과 관련한 사찰 창건이 많다는 것은 영주 지역이 화엄불교의 근원지였음을 의미한다.
2. 고려시대
고려시대 영주 지역의 불교는 신라 불교와 마찬가지로 왕실의 보전, 백성의 안녕, 호국불교로서 기능을 수행했던 것으로 보이나, 관련 기록은 많지 않다. 태조 왕건(王建)이 비로사에 여러 번 다녀간 사실, ‘진공대사(眞空大師)’ 시호와 ‘보법(普法)’이라는 탑 이름을 왕건이 하사했다는 사실 정도가 전한다. 고려시대의 저명한 고승들이 영주 지역 사찰에서 수도하거나 주석하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고승으로는 부석사의 원융(圓融), 유석사의 나옹(懶翁), 도암(道庵)[순흥 읍치에서 70여 리 떨어진 문수산 동남쪽에 있었던 암자]의 지눌(智訥) 등이 있다. 이들은 고려시대 영주 지역 불교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3. 조선시대
조선시대 영주 지역의 불교는 조선의 숭유억불정책으로 수난의 시기이자 쇠퇴기였다. 현재 영주 지역의 사찰 가운데서 조선시대에 창건된 사찰은 응석사(凝石寺) 정도이다. 조선시대 영주 지역에서 활동한 사찰 수는 대략 11~14개소 정도이다. 16세기 전반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부석사·흑석사·응석사·정불사(淨佛寺)·행의사(行衣寺)·용천사(龍泉寺)·성혈사·초암(草庵)[초암사]·쌍악사(雙岳寺)·양지사(陽地寺)·숙수사(宿水寺)·경원사(慶元寺) 등 12개소가 확인되며,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기존의 행의사와 정불사가 폐사되고 진월사·비로사·명봉사(鳴鳳寺)가 새로 창건되어 모두 13개소가 확인된다.
또 18세기 말엽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서는 흑석사·응석사·양지사·숙수사·경원사가 폐사되고, 희방사·중대사(中臺寺)·지방사(池方寺)가 새로 창건되어 모두 11개소 사찰이 확인된다. 19세기 말엽에 편찬된 『영남읍지(嶺南邑誌)』에는 지방사·용천사·쌍악사가 폐사되고, 영은암(靈隱庵)·몽견암(夢見庵)·도암·금정암(琴鄭庵)·성불암(成佛庵) 등이 새로 창건하여 14개소가 존재하였다. 영주 지역 사찰의 흥망성쇠가 빈번한 가운데서도 폐사되지 않고 지속해서 사세를 유지한 사찰은 부석사·성혈사·초암사 정도이다.
4. 근대 이후
1895년 승려들의 ‘도성출입 금지령’이 해제되면서, 정책적인 차원의 억불정책은 사실상 폐지되고 불교 활동이 자유롭게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11년 일제가 「사찰령(寺刹令)」을 공포하면서, 일본 불교가 유입되어 불교계는 다시 어려움을 맞이하게 되었다. 광복과 더불어 불교계는 한국불교조계종을 재건하고 전국승려대회를 개최하는 등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으나, 영주 지역의 불교는 발전보다 어려움을 겪게 된다. 특히 분단과 6.25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더 컸다. 1949년 소백산전투사령부의 소거령으로 소백산에 있던 백룡사·영전사·석륜암 등이 폐사되어 이전되었으며, 6.25전쟁으로 비로사·초암사·희방사 등이 전소되거나 일부 소실되면서 귀중한 문화재를 잃기도 하였다.
[영주 지역의 불교 문화재]
영주시는 경상북도의 다른 지역과 비교해 문화유산이 많은 편이다. 영주시가 보유하고 있는 지정문화재는 2015년 기준으로 122점으로 경상북도 전체 1,833점의 6.7%를 차지하며, 경상북도에서는 세 번째로 많이 보유하고 있다. 영주 지역의 지정문화재 가운데 국보는 7점 중 6점, 보물은 23점 중 14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는 32점 중 12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는 46점 중 10점이 불교 문화재이다. 국가지정 문화재인 국보와 보물의 경우, 영주 전체 30점 중 불교 문화재가 20점으로 67%를 차지하고 있다. 영주 지역의 국가지정 불교 문화재는 다음과 같다.
국보로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榮州浮石寺無量壽殿-石燈)[국보 제17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榮州浮石寺無量壽殿)[국보 제18호], 영주 부석사 조사당(榮州浮石寺祖師堂)[국보 제19호],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榮州浮石寺塑造如來坐像)[국보 제45호], 부석사 조사당벽화(浮石寺祖師堂壁畵)[국보 제46호],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榮州 黑石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 및 腹藏遺物)[국보 제282호] 등 6점이다.
보물은 영주 숙수사지 당간지주(榮州宿水寺址幢竿支柱)[보물 제59호], 영주 영주동 석조여래입상(榮州榮州洞石造如來立像)[보물 제60호], 영주 석교리 석조여래입상(榮州石橋里石造如來立像)[보물 제116호],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榮州北枝里石造如來坐像)[보물 제220호],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榮州可興洞磨崖如來三尊像-如來坐像)[보물 제221호],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榮州浮石寺三層石塔)[보물 제249호],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榮州浮石寺幢竿支柱)[보물 제255호], 영주 신암리 마애여래삼존상(榮州新岩里磨崖如來三尊像)[보물 제680호], 영주 흑석사 석조여래좌상(榮州黑石寺石造如來坐像)[보물 제681호], 영주 성혈사 나한전(榮州聖穴寺羅漢殿)[보물 제832호], 영주 부석사 고려목판(榮州浮石寺高麗木板)[보물 제735호], 영주 비로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榮州毘盧寺石造阿彌陀如來坐像)[보물 제996-1호], 영주 비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榮州毘盧寺石造毘盧遮那佛坐像)[보물 제996-2호], 영주 부석사 오불회 괘불탱(榮州浮石寺五佛會掛佛幀)[보물 제1562호], 영주 부석사 석조석가여래좌상(榮州浮石寺石造釋迦如來坐像)[보물 제1636호] 등 14점이다. 이를 미루어 볼 때, 영주 지역은 불교 문화재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영주 지역의 불교 현황]
영주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찰의 수는 2015년 기준으로 104개소이다. 이들 사찰이 소속된 종단의 수는 20여 개가 넘으며, 이 중에서 조계종이 45개로 가장 많고 그다음 법화종·태고종·천태종 순이다. 그 외 종단으로는 선교종·총화종·대한불교관음종·해동종·대한불교금강선원·원불교·진각종·정토종·미륵종·화엄불교·대성불교·세계불교평화종 등이 있으며, 개인이 거주하거나 종단에 등록되지 않은 사찰도 9개소나 된다.
전통사찰은 부석사·성혈사·초암사·흑석사·진월사·비로사·유석사·희방사·영주포교당 등 9개소이다. 영주 지역의 사찰도 다른 농촌 지역 사찰과 마찬가지로 인구 감소와 불자들의 고령화로 사세가 점차 약화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 사회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불교의 기능이 점차 상실되어 가고 있으며, 사찰 운영의 어려움으로 인해 참선이나 공부보다는 기복적인 면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