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3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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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盧秉柱 |
영어음역 | No Byeongj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병호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노병주는 1929년 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일본인 학교인 광주중학교 학생들 간의 충돌 사건으로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학교 강당에서 향후의 행동 방침을 세우기 위해 열었던 집회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당시 5학년 대표였던 노병주(盧秉柱)는 이형우(李亨雨) 등의 제의를 받아들여 가두시위 투쟁을 결정하고 대오를 정비하여 시위 대열을 지휘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1930년 2월 2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같은 해 5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금고 6월에 집행 유예 5년의 형이 확정되기까지 6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3년에 건국포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