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22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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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蓋島里華山天祭 |
영어의미역 | Village-Ritual Ceremony of Hwasan Village, Gaedo-ri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개도리 화산마을 |
집필자 | 나경수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개도리 화산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화정면 개도리 화산 천제는 매년 음력 3월 1일 밤 10시경 마을 뒤편에 위치한 천제봉의 제단에서 주민들이 공동으로 모시는 마을 제의이다(『한국지명총람』에는 삼월 삼짇날에 제사지낸다고 기록). 주민 제보에 의하면 3월 1일에 천제봉에서 모신 후 하산하여 마을 뒤쪽 산 아래에 위치해 있는 당집에서 3일까지 모신다고 한다.
제사를 모시는 사람은 ‘당주’와 ‘부당주’이다. 당주는 남자이며, 부당주는 여자인데, 대개 부부가 맡는다. 예전에 당주를 선정할 때는 생기복덕을 보는 것을 물론이고 며느리가 아이를 배면 안 되고, 상(喪)이 들면 안 되고, 어린 아이가 있어도 안 되는 등 엄격했다고 한다. 지금은 예전처럼 엄격하지는 않지만 주민들이 당주하는 것을 기피하기 때문에 여전히 당주 선정은 어렵다고 한다.
최근 당주의 선정은 이장에게 달려 있다. 마을총회에서 이장을 뽑으면 이장은 이때부터 당주로 모실 사람을 물색하여 정한다. 이장이 당주를 정하고 나면 그해 이장 이 할 일은 다 했다고 말할 정도로 당주를 선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러므로 제관인 당주는 이장의 노력에 따라 빨리 정해지기도 하고 늦게 정해지기도 한다.
음력 3월 2일에 당집에서 제를 모시는 제관은 당골이다. 당골은 여수에서 돈을 주고 부탁을 한다. 당골은 3월 3일까지 제를 주관하는데, 최근 몇 년은 조종철[여수시 봉산동, 64세]이 당골로 왔다고 한다.
제비는 마을 기금으로 충당한다. 제사 비용은 근년에 오면서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다. 2004년과 2005년에 300만 원, 2006년에 200만 원, 2007년에는 150만 원이었다. 제사 비용은 제주에게 50만 원, 당골과 부대 비용으로 약 100만 원을 지출한다. 이 마을의 제비는 적은 편이 아니라고 여겨지지만 실상은 부족하다고 한다. 따라서 마을 주민을 비롯한 관내에서 온 사람들의 희사금을 받아 부족한 비용을 충당한다. 희사금은 30여 년 전 마을의 불우한 정신지체우 학생을 돕기 위해 받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였다고 한다.
제물은 천제를 모실 때는 쌀과 밥을 할 용기만 가지고 가서 제단에서 하므로 특별히 준비할 것이 없다. 당집에서의 제사는 당골에게 의뢰하기 때문에 당골이 준비해 온다. 제주는 소주나 막걸리를 사용한다. 천제봉에서는 제주를 올리지 않고 당집에서만 올린다.
예전에 이 마을에서는 그해 제관인 당주에게 섬[島]을 주었다고 한다. 당주에게 주는 섬을 ‘당주섬’이라고 한다. 개도리 전체 섬 중에서 당주에게 줄 섬을 따로 떼어 놓았다고 한다. 화산리에서 제를 모시지만 개도리 전체 주민을 위한 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연원 및 변천]
화정면 개도리 화산 천제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이 마을에는 군마(軍馬)를 키우는 목장이 있었는데, 군마가 병이 들어 죽으면 그 책임을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다. 이에 주민들은 정신적·신체적 위해(危害)를 피하고, 이를 모면하기 위해 군마가 병이 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을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농사와 바다일이 잘 되고 마을 주민들의 안녕을 위해 하늘에 제사를 모신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음력 3월 1일의 첫 제의는 천제봉의 천제단으로 돌 제단이다. 3월 2일은 마을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당집이다. 당집 내에 제상을 차리고 당집 외부에 있는 큰 나무 앞에도 제상을 차린다.
[절차]
제를 모시러 천제산[일명 천제봉, 338m]에 올라가기 전에, “오늘 저녁은 일찍 불 끄고 자라.”라고 방송을 하는데, 이는 당주와 부당주가 천제봉에 올라가는 것을 보지 말라는 뜻에서이다.
당주와 부당주는 3월 1일 밤 10경에 쌀과 솥단지 등 제물을 준비하기 위한 기물을 가지고 천제봉에 올라간다. 밥은 시루에 찐다. 이때 두 사람은 밥을 다 할 때까지 말을 하지 못한다. 밥이 다 되면 제물을 올리는데 찬(饌)이 없이 정상의 다섯 군데에 메만 차려 놓는다. 메를 차린 후에 재배를 하고 축문을 읽고 소지를 올린다. 축문은 따로 보관하고 있는 것이 없어 그때그때 쓴다고 한다. 소지가 끝나면 당주와 부당주의 역할은 여기에서 끝난다.
이튿날은 마을 뒤편 산 아래쪽에 있는 당집에서 제사를 모신다. 당집의 제는 여수에서 돈을 주고 모시고 온 당골이 주관한다. 2일 저녁부터 당골이 제물로 준비한 돼지머리, 떡, 과일, 굴비 등으로 상을 차리고 밤이 새도록 굿을 한다. 주민들은 당집 밖에서 마을에서 준비한 음식을 먹으면서 논다고 한다. 이장과 마을 총계장 등이 주민들과 함께 돼지를 잡고 술과 음식을 준비하여 주민들은 물론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모두 함께 다음날까지 먹고 논다.
삼일날에도 제사는 계속된다. 당집 밖에 있는 당산나무 앞에 자리를 깔고 제상을 차려 놓는다. 주민들도 당산나무 옆으로 상을 차려서 진열한다. 2007년에는 마을 주민 일곱 명이 일곱 상을 차려왔다. 주민들이 상을 차려오는 것을 ‘헌석이 나온다’라고 한다.
제가 다 끝나면 제사 음식은 당골네가 먹는다. 남은 음식은 일종의 헌식인 오장치를 할 때 쓴다. 오장치에는 제사 음식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내온 헌석 상의 음식도 조금씩 덜어 함께 담는다. 예전에는 이 오장치를 서로 하려고 했다. 지게에 제물 등을 담아 지고 바닷가로 가는데, 서로 지게를 지려고 하였다. 지게를 지면 아들을 낳는다고도 하고 집안에 복이 들어온다고 하여 주민들 간에 가벼운 다툼이 있기도 했다고 전한다.
현재는 간척을 하여 바닷가가 멀어 경운기나 트럭을 이용한다. 오장치를 하러 갈 때는 당골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간다. 예전에는 마을 주민 수십 명이 꽹과리를 치면서 갔는데 지금은 멀기도 하거니와 마을 주민들이 연로하여 주민(주로 여자) 몇 명과 당골이 징을 가지고 간다. 오장치를 하면서 마을의 풍년과 풍어를 기원한다.
[부대행사]
20여 년 전까지는 정월 대보름날을 전후해서 집집마다 굿을 치고 돌아다니면서 액을 쫓는 지신밟기를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