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6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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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興李氏 |
영어공식명칭 | Daeheung Lee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고수연 |
본관 | 대흥 -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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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시조 | 이연계(李連桂) |
[정의]
이연계를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의 토착 성씨.
[개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 조선 전기 지리지에는 대흥이씨가 예산의 토착 성씨로 기록되어 있다.
[연원]
대흥이씨(大興李氏) 시조 이연계(李連桂)[?~1407]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6촌 형제로 고려 말 이부상서를 지냈다. 이성계의 조선 개국을 반대하며 예산군 대흥면으로 낙향하였고, 이후 후손들이 전주이씨(全州李氏)에서 분관하여 대흥(大興)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입향 경위]
이연계와 후손들이 대흥을 본관으로 삼게 된 것은 이성계의 조선 개국과 관련이 있다. 이연계는 고려 말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과 이부상서를 지냈다. 이성계의 이복형인 이원계(李元桂)와 마찬가지로 이연계도 고려에 대한 절의를 굽히지 않고 끝까지 조선 개국을 반대하다가 예산군 대흥면으로 낙향하였다. 이후 조준(趙浚)등의 참소(讒疏)로 이연계는 경상북도 예천군으로 귀양을 갔다. 이후 이연계의 높은 절의를 가상히 여긴 태종은 1403년(태종 3) 귀양살이를 풀어 주면서 대흥군으로 봉하였지만 봉군을 마다하고 다인현(多仁縣)[현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서 살다가 1407년(태종 7) 사망하였다. 이연계는 자손에게 유언하기를 “내 자손은 반드시 대흥으로 관향(貫鄕)을 삼을 것”이라 하였으며, 이후 전주이씨로 복원하라는 왕의 하교도 있었으나 일부 후손들은 대흥을 본관으로 세계를 이어 왔다.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