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665 |
---|---|
한자 | 大興韓氏 |
영어공식명칭 | Daeheung Ha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고수연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080년 - 한유충 출생 |
---|---|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146년 - 한유충 사망 |
본관 | 대흥 - 충청남도 예산군 |
성씨 시조 | 한유충(韓惟忠) |
[정의]
한유충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의 토착 성씨.
[연원]
『씨족원류(氏族源流)』에 따르면 대흥한씨(大興韓氏) 시조 한유충(韓惟忠)[1080~1146]은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고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를 역임하였다. 아들 한문준(韓文俊)[?~1190]은 고려 인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다. 후손들이 한유충을 시조로 하고 대흥(大興)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왔다.
대흥은 예산군에 속한 지명으로 1413년(태종 13)에는 대흥현이 되었고, 1682년(숙종 7) 대흥군으로 승격하였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예산군, 덕산군과 함께 예산군으로 통합되면서 대흥군은 폐지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 조선 전기 지리지에는 대흥한씨가 예산의 토착 성씨로 기록되어 있으며, 『여지도서(輿地圖書)』 인물 조에 한문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한유충의 초명(初名)은 한주(韓柱), 자는 안석(安石), 시호는 경열공(敬烈公)이다. 아버지는 검교우복야(檢校右僕射) 한원경(韓元卿)이고, 어머니는 시전중내급사(試殿中內給事) 이인효(李因孝)의 딸 이씨(李氏)이다. 1133년 이지저(李之氐)와 함께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다가 홍주 해상에서 풍랑을 만나 되돌아왔다. 1135년 예부상서동수국사(禮部尙書同修國史)를 역임하였고, 이듬해에는 추밀원부사로 재직하던 중 당시 묘청의 난을 진압하는 중군병마사가 군무를 방해한다고 상주하여 충주목사로 강등되었다. 그 뒤 다시 기용되어 좌복야 추밀원사 판삼사사(左僕射樞密院使判三司事)를 지냈다. 참지정사판공부사 겸 태자소부(參知政事判工部事兼太子少傅)에 오르고, 판상서예부사수국사태자소보(判尙書禮部事修國事太子少保)·중서시랑문하평장사태자소사(中書侍郎門下平章事太子少師)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1144년(인종 22)에는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과거를 관장하기도 하였다.
한문준은 고려 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장주(長州)·장흥(長興)·남원(南原) 등 3군의 부사와 남경유수(南京留守)를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명종 초에 추밀원우승선(樞密院右承宣)에 뽑혀 부사에 승진하였는데, 송유인(宋有仁)에게 거슬려 판사재시사(判司宰寺事)로 강등되었다. 여러 관직을 거쳐 참지정사 보문각대학사판예부사(參知政事寶文閣大學士判禮部事)가 되고, 이어 정당문학판병부사(政堂文學判兵部事)가 되었다. 1183년(명종 13)에는 문하시랑평장사판이부사(門下侍郎平章事判吏部事)가 되어 공정하다는 평을 들었다. 70세에 관직에서 물러나 1190년에 사망하였다. 시호는 정의(貞懿)이다.
[입향 경위]
대흥한씨는 예산 지역의 토착 성씨로 조선 초기의 각종 지리지에 토착 성씨로 기록되어 있다.
[현황]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예산군에는 대흥한씨가 거주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