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6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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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山宋氏 |
영어공식명칭 | Deoksan Song Clan |
이칭/별칭 | 덕풍송씨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고수연 |
본관 | 덕산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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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시조 | 송호산(宋壺山) |
[정의]
송호산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의 토착 성씨.
[개설]
덕산(德山)은 예산군에 속한 지명으로 본래 덕풍(德豊)과 이산(伊山) 두 개 현을 합한 명칭이다. 1405년(태종 5) 두 개 현을 병합하여 덕산현을 만들었고, 1828년(순조 28) 덕산군으로 승격하였다. 1914년 덕산면으로 축소되어 지금은 예산군에 속한 덕산면으로 남아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 조선 전기 지리지에는 덕산송씨가 예산의 토착 성씨로 기록되어 있다.
[연원]
덕산송씨(德山宋氏)의 시조 송호산(宋壺山)은 고려 후기 찬성사(贊成事)를 역임했고, 아들인 송림(宋琳)은 판사(判事)에 이르렀다. 증손자인 송문(宋文)이 고려 말에 호조판서(戶曹判書)를 지냈으며 나라에 공을 세워 덕성군(德城君)에 봉해졌다. 그 후 덕성의 지명이 덕산으로 개칭됨에 따라 후손들은 여산송씨(礪山宋氏)에서 분적(分籍)하여 덕산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世界)를 잇게 되었다. 그러나 시조 송호산의 세 아들 중 송첨(宋詹)과 송빈의 후손은 여산송씨 원윤공파로 이어져 왔고, 송문의 직계인 송림계통만 덕산송씨인 것으로 보아 송문의 후손들이 분적하면서 송호산까지 소급해 분적한 것으로 짐작된다.
덕산송씨가 배출한 인물을 살펴보면 조선 초에 보승낭장(保勝郎將)을 지낸 송구(宋璆)가 태종(太宗) 때 장령(掌令)을 역임한 아들 송계(宋啓)와 함께 집안을 일으켰다. 송계의 아들 송인창(宋仁昌)과 송원창(宋元昌)은 부사와 정랑을 역임하여 덕산송씨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다. 송원창의 아들인 송경(宋經)은 현감으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으며, 후손 송경림(宋慶霖)은 직장(直長)에 올라 판관(判官)을 역임한 송득린(宋得麟)과 함께 가문을 더욱 빛냈다.
[입향 경위]
덕산송씨는 예산 지역의 토착 성씨로, 조선 초기 각종 지리지에 토착 성씨로 기록되어 있다.
[현황]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덕산송씨는 1985년에는 3,962명, 2000년에는 390명으로 통계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