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7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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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允諧 |
영어음역 | O Yunhae |
이칭/별칭 | 여화(汝和),만운(晩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홍영의 |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여화(汝和), 호는 만운(晩雲). 아버지는 오희문(吳希文)이며, 큰아버지 오희인(吳希仁)에게 입양되었다.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吳允謙)의 아우이고, 오달제(吳達濟)의 아버지이다.
[활동사항]
선조 말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1610년(광해군 2) 세자익위사부솔(世子翊衛司副率)이 되고, 이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이어 수찬·교리·응교·예조정랑 등을 역임하고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을 지낸 뒤 해주목사로 나갔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 강화가 성립되자 이것을 부끄럽게 여겨 벼슬을 버리고 산중에 은거하고 일생을 마쳤다.
[학문과 사상]
성품이 관대하여 남의 잘못을 탓하지 아니하나 공무집행에 있어서는 엄격한 규율을 지키고 공사의 구분을 분명히 하였다. 백성을 사랑하여 농업을 권장하고 학문을 진작하며, 필요 없는 부역과 남세(濫稅)를 경감하여 주민의 노역을 덜어주고, 흉년에 창고를 열어 기민을 진제(賑濟)하는 등 애민정치에 힘썼다.
[저술 및 작품]
문사에 뛰어나 시와 표(表)에 능하였다. 저서로는 『만운집』이 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