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8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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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端相 |
영어음역 | Lee Dansang |
이칭/별칭 | 유능(幼能),정관재(靜觀齋),서호(西湖),문정(文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재광 |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능(幼能)이며, 호는 정관재(靜觀齋)·서호(西湖)다. 증조부는 이계(李啓), 할아버지는 좌의정 이정구(李廷龜), 아버지는 대제학 이명한(李明漢)이다. 외조부는 박동량(朴東亮), 부인은 이행원(李行遠)의 딸이다.
[활동사항]
1649년(인조 27)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설서(說書)·대교(待敎)·교리(校理) 등을 거쳐 이조와 병조의 정랑(正郞)을 역임하였고, 1655년(효종 6)에는 사가독서(賜暇讀書)한 뒤 대간에 들어가 구애됨이 없이 정론(正論)을 밝혔으며, 전라도 지방을 두루 살펴 기근이 심한 고을을 구제하게 하였다. 그 뒤 효종이 죽고 정국이 변하자 두문불출하고 학문에만 전념하다가 잠시 청풍부사(淸風府使)를 지냈으며, 이어 1658년(효종 9) 응교(應敎)를 거쳐 인천부사(仁川府使)가 되었다.
1664년(현종 5) 집의가 되어 입지권학(立志勸學)에 관한 다섯 조목을 상소하고 스스로 관직을 떠났다. 홍명하(洪命夏)·송준길(宋浚吉)·조복양(趙復陽) 등이 학문과 덕행을 인정, 경연관(經筵官)에 추천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양주 동강(東岡)으로 은퇴하였다. 그 뒤 승지와 병조참지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1669년 부제학으로 서연관을 겸하였으나 곧 사양하고 물러났다.
[학문과 사상]
문하에서 아들인 이희조(李喜朝)와 김창협(金昌協)·김창흡(金昌翕)·임영(林泳) 등 유명한 학자가 배출되었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대학집람(大學集覽)』·『사례비요(四禮備要)』·『성현통기(聖賢通紀)』·『정관재집(靜觀齋集)』 등이 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고, 김수항(金壽恒)이 지은 비가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1680년(숙종 6) 민정중(閔鼎重)의 건의로 이조참판 겸 경연, 양관제학(兩館提學)이 추증되었고, 다시 이조판서로 추증되었다. 양주의 석실서원(石室書院), 인천의 학산서원(鶴山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