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8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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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壽民 |
영어음역 | Lee Sumin |
이칭/별칭 | 일경,충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안장리 |
[정의]
조선 후기의 무신.
[가계]
본관은 청해(靑海). 자는 일경(一卿). 개국공신(開國功臣) 1등인 이지란(李之蘭)의 후손으로 첨정(僉正) 이문주(李文柱)의 손자이며, 금구(金溝) 이준생(李俊生)의 외손자이다. 아버지는 증참판(贈參判) 이후(李詡)이며, 부인은 통덕랑(通德郞) 안두극(安斗極)의 딸이다.
[활동사항]
이수민(李壽民)[1651~1724]은 숙종 대에서 경종 대까지 활동하였으며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고, 훈련원주부(訓練院主簿)·도총부도사(都總府都事)·고원군수(高原郡守)·낙안군수(樂安郡守)·장흥부사(長興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1701년(숙종 27) 나주토포사(羅州討捕使)에 임명되었으며, 우림위사복장(羽林衛司僕將)·철산부사(鐵山府使)·전라좌도수군절도사(全羅左道水軍節度使)·장단방어사(長湍防禦使)·전라병마절도사(全羅兵馬節度使)·삼도통제사(三道統制使) 등을 지냈다.
1719년(정조 15) 어영중군(御營中軍)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고, 금군별장겸도총부부총관(禁軍別將兼都總府副摠官)을 거쳐 통제사(統制使)가 되었다. 1721년(경종 1)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노론 김창집(金昌集)이 유배될 당시 통영(統營)에서 마중하고 호위를 붙였다고 소론(少論)이 탄핵하여 제주도 정의(旌義)에 유배되었으며, 유배지에서 죽었다.
[묘소]
묘소와 묘갈(墓碣)이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리에 있다. 묘갈은 1731년(영조 7)에 세웠으며, 대사헌(大司憲) 이재(李縡)가 짓고 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 김진상(金鎭商)이 썼으며,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민진원(閔鎭遠)이 전액(篆額)하였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충정(忠貞)이며, 1725년(영조 1) 복관되어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증되었다. 사후에는 용인 굴암(窟巖)[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리]에서 장사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