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9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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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行祥 |
영어음역 | Lee Haengsang |
이칭/별칭 | 공리,왕림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안장리 |
성격 | 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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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
성별 | 남 |
생년 | 1725년 |
몰년 | 1800년 |
본관 | 연안 |
대표관직 | 첨지중추부사 |
[정의]
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학자.
[개설]
이행상은 도암(陶菴) 이재(李縡)의 문인으로 영조·정조 대에 활동한 학자이다. 후대에 학문 성과를 인정받아 송단(宋湍)·성덕명(成德明) 등과 함께 이재 문하의 삼처사(三處士)로 불리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골에서 출생하였으며, 일찍부터 사서삼경에 통달하였다.
[가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리(公履), 호는 왕림(旺林). 문강공(文康公) 이석형(李石亨)의 후손으로 익위(翊衛) 이신로(李莘老)의 손자이며, 통덕랑(通德郞) 이철좌(李喆佐)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창원황씨이다.
[활동사항]
스승 사후에 유적을 정리하여 도암의 명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말을 들었으며, 당시 유자들의 행위를 비판하고 포은 선생 묘소 동쪽 기슭 은적암(隱寂菴)에 사(社)를 세우고 시골 수재를 모아 가르치니 사람들이 왕림 선생이라 칭하게 되었다. 아울러 이곳을 왕림리라 하였다.
정조 때 경술(經術)의 선비를 구할 때 광릉참봉(光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으며, 1794년(정조 18) 70세에 수질(壽秩)로 통정대부(通政大夫)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올랐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필사본 『왕림유고(旺林遺稿)』가 있다.
[상훈과 추모]
사후인 1824년(순조 24)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