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049 |
---|---|
한자 | 許曄 |
영어음역 | Heo Yeop |
이칭/별칭 | 태휘,초당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재광 |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태휘(太輝), 호는 초당(草堂). 아버지는 군자감부봉사(軍資監副奉事) 허한(許瀚)이며, 부인은 강릉김씨(江陵金氏)로서 예조판서(禮曹判書) 김광철(金光轍)의 딸이다. 아들은 허성(許筬)·허봉(許篈)·허균(許筠)이고, 딸은 허난설헌(許蘭雪軒)이다.
[활동사항]
허엽(許曄)[1517~1580]은 1546년(명종 1)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로 급제하고, 1551년(명종 6) 부교리(副校理)가 되었으며, 1553년(명종 8) 사가독서(賜暇讀書)한 뒤 장령(掌令) 때 재물을 탐한 죄로 파면되었다. 1559년(명종 14) 필선(弼善)으로 재기용되고 이듬해 대사성(大司成)에 올랐으며, 1562년(명종 17) 지제교(知製敎)를 겸임하고 박계현(朴啓賢)과 함께 명종의 소명을 받고 옥취정(玉翠亭)에 들어가 율시(律詩)로 화답하였다.
1562년(명종 17) 동부승지(同副承旨)로 참찬관(參贊官)이 되어 경연(經筵)에 나가 조광조(趙光祖)·윤근수(尹根壽)의 신원(伸寃)을 청하고, 허자(許磁)·구수담(具壽聃)의 무죄를 논하다가 파직되었다. 이듬해 다시 기용되어 삼척부사가 되었으나 과격한 언사 때문에 다시 파직되었다.
1568년(선조 1) 진하부사(進賀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대사간(大司諫)에 올라 향약(鄕約)의 시행을 건의하였다. 1575년(선조 8) 동인과 서인의 당쟁이 시작될 때 김효원(金孝元)과 함께 동인의 영수가 되었다. 같은 해 부제학(副提學)을 거쳐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가 되었으나 병으로 사퇴하고, 중추부동지사(中樞府同知使)가 되었다가 경상북도 상주(尙州)의 객관(客館)에서 생을 마쳤다.
[저술 및 작품]
김정국(金正國)이 찬수한 『경민편(警民編)』을 보충해 반포하고, 『삼강이륜행실(三綱二倫行實)』 편찬에 참여하였다. 저서에 『초당집(草堂集)』, 『전언왕행록(前言往行錄)』 등이 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30년간 관직 생활을 하며 청렴결백하여 청백리에 녹선(錄選)되었다. 황해도 개풍군 영남면 화곡서원(花谷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