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1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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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四面示威運動 |
영어음역 | Namsa-myeon Siwi Undong |
영어의미역 | Independence Movement in Namsa-mye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박수현 |
[정의]
1919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월곡마을에서 일어난 3·1운동.
[역사적 배경]
1910년대 용인 지역 농민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와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빠져 있었다. 남사면 시위운동은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과 저항 의식이 독립 선언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특히 굴암사 승려들이 배포한 「독립선언문」이 남사면 월곡마을에 전해지면서 시위 운동이 촉발되었다.
[경과]
1919년 3월 31일 내기동에서 봉무리, 수세리, 완장리, 아곡리, 삼인리 등지의 주민 3~4백 명이 모여 만세 시위를 전개했다. 시위대는 면장 이영구(李榮求)를 시위에 참여시키려 했으나 이영구는 송전리 주재소 분견대로 피신하여 시위 사실을 신고하였다.
헌병들이 출동하자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4월 1일 200여 명의 시위대가 면장 이영구의 행위에 격분하여 면사무소를 습격하였다. 또한 4월 2일에는 남사면 창리에서 기독교인과 천도교인 등 400여 명이 시위 운동을 전개하였다.
[결과]
3월 31일부터 4월 2일까지 3일간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지만 무장한 일제 군경에 의해 강제 해산당했다.
[의의와 평가]
남사면 시위운동은 일제와 친일 면장에 대항해 면사무소를 습격하는 등의 적극적인 투쟁을 전개하였다. 또한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위 운동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3·1운동의 대중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