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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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餘面示威運動 |
영어음역 | Suyeo-myeon Siwi Undong |
영어의미역 | Independence Movement in Suyeo-mye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박수현 |
성격 |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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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연도/일시 | 1919년 3월 24일 |
종결연도/일시 | 1919년 3월 28일 |
발생(시작)장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
관련인물/단체 | 임원호(任元鎬)|김경운(金敬云)|맹철호(孟喆鎬) |
[정의]
1919년 경기도 용인군 수여면에서 일어난 3·1운동 시위.
[역사적 배경]
1910년대 용인 지역 농민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와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수여면 시위운동은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과 저항 의식이 독립 선언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경과]
3월 24일 김량장공립보통학교 학생 30여 명이 졸업식 이후 김량장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수여면 주민들의 시위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3월 27일에 큰 시위가 일어났고, 3월 28에는 김량장리에서 시작된 시위가 점차 확산되어 군청 앞 대규모 시위로 발전하였다.
일본 헌병이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발포를 하자 시위 양상은 폭력 투쟁으로 변모하였다. 수여면 시위운동을 주도한 이들은 임원호(任元鎬), 김경운(金敬云), 맹철호(孟喆鎬) 등 젊은 청장년층이었다.
[의의와 평가]
많은 희생자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적극적으로 대항한 시위였다. 또한 학생을 비롯한 젊은 청장년층이 시위를 주도하거나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