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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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綾城具氏 |
영어음역 | Neungseong Gussi |
영어의미역 | Neungseong Gu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북리 |
집필자 | 김장환 |
세거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장평리|남사면 북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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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시기/연도 | 세조 때 |
성씨시조 | 구존유 |
입향시조 | 구익수 |
[정의]
구존유를 시조로 하고 구익수와 구명징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연원]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의 능성구씨는 장평리 일대에 세거하는 문중으로, 능성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의 옛 지명이다. 능성구씨의 시조는 고려 말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과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을 지낸 구존유(具存裕)로 주잠(朱潛)의 사위이다.
주잠은 1224년(고종 11) 송나라의 한림학사로 있을 때, 몽골의 침입을 피하여 자신을 포함한 8학사와 고려로 망명하여 능성에 은거하였다. 주잠이 능주에 숨어 살면서 능성주씨로 관적한 것과 같이, 구존유도 생활 근거지였던 당시의 지명에 따라 본관을 능성구씨로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능성구씨 시조의 6대손대인 여말선초에 9파로 갈리게 되는 데, 그 중 도원수파(都元帥派)·좌정승파(左政丞派)·판안동파(判安東派)의 3파가 조선시대에 가장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으며, 자손이 크게 번창하여 이들 3파가 오늘날 구씨 전체 인구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도원수파가 40%를 차지하고 있다.
용인에 세거해온 능성구씨는 좌정승파와 판안동파의 후예이다.
[입향경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세거한 능성구씨의 입향조는 두문동 72명 중 한 사람인 구홍(具鴻)의 후손 구익수이다. 그는 사육신이나 생육신과 친교하였으며 세조가 공조참판으로 임명했으나 나아가지 않고 낙향하여 백암면 장평리 율애마을과 석천리 덕은마을 일대에 세거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에 세거한 능성구씨의 입향조는 판안동파의 파조인 구성량의 11대손 구명징(具明徵)이다. 판안동파는 본래 당진에 세거해 왔으나 후에 화성시 동탄면 장지리로 옮겼다가 통삼리와 북리 일대로 옮겼다. 장지리는 그런데로 풍족하나 양반이 살데는 못된다고 하여 옮겨왔다고 하는데 풍수적인 이유로 세거한 것으로 보인다.
[현황]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세거한 능성구씨는 좌정승파로, 후손 중에 언론사 기자를 역임하고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의 특보로 활동한 구범회(具範會)가 있다.
남사면에 세거한 판안동파의 후손으로 구철회가 국회의원을 지냈고 구원회는 전매국장, 구박은 동양방송 아나운서, 구관회 국무총리 비서, 구자혁은 용인교육장을 지냈다. 구본흥이 남사중학교 교장을 지냈고 구연호와 구자철이 남사면장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