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28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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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出世-李柱國 |
영어음역 | Kkwong Deoge Chulsehan Lee Juguk |
영어의미역 | Lee Juguk and a Pheasant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 |
집필자 | 정혜경 |
[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에서 이주국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이주국은 정종(定宗)의 아들인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1721년(경종 1) 3월 23일 용인 원삼면 문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호조참판으로 추증된 이함(李函)이고, 어머니는 능성구씨(陵城具氏)이다. 이주국이 태어나던 날 밤 부친의 꿈에 한 마리 검은 용이 대들보를 타고 올라가다 돌연 준마로 변해서 마당 가운데 서 있는 것을 보고 낳았다고 하여 처음 이름은 준득(駿得)이였다. 7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고, 무숙공(武肅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채록/수집상황]
1984년에 채록되어 『내 고장 옛 이야기』에 실려 있다.
[내용]
오백당 이주국은 용인 태생으로 일찍이 무과에 급제했으나, 내외종간이던 당시의 세도가 구선복의 미움을 받아 벼슬길이 막혀 있었다. 영조 말년에 이주국은 서울 삼청동 뒷산에서 벌터질(활에 살을 먹이지 않고 시위만 잡아당겨 쏘는 연습을 하는 것)을 하고 있었다. 이때 장끼 한 마리가 푸드덕 치솟아 오르므로 잽싸게 살을 먹여 쏘았더니 어느 대갓집 후원으로 떨어졌다.
그 집은 바로 영조의 사돈이며 장헌세자의 장인이 되는 홍봉한의 집이었다. 이를 알 까닭이 없는 이주국은 그 집 솟을대문 앞으로 가서 하인을 불러내어, “여보게 내가 뒷산에서 꿩을 쏘았는데 이 댁 후원으로 떨어졌으니 꿩일랑 자네가 갖고 살이나 찾아주게.” 하고 점잖게 말했다. 하인은 꾀죄죄한 차림의 애송이가 와서 깎듯이 ‘허게’를 쓰니 비위가 거슬렸다.
감히 뉘댁 문전에 와서 누구를 오라 가라 하느냐는 생각에, 아무리 양반계층의 뼈다귀라고는 하더라도 지체 높은 대감댁 후광이 그만 못하랴는 방자스러운 생각에, “댁 같은 사람에게 맞아죽을 꿩도 있습디까? 그따위 꿩이라면 이 댁에 떨어지지도 않소!” 하고 문을 꽝 닫아 버렸다. 분통이 터진 이주국은 대문을 걷어차고 쫓아 들어가 놈을 번쩍 들어서 마당 한가운데로 던지면서, “이놈! 종놈 주제에 시키는 일이나 하면 되지 웬 놈의 잔소리가 그리 심하더냐!” 하고 꾸짖었다.
나가떨어진 하인은 “애고 죽소.”라고 엄살을 떨었다. 그러자 그 집 하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고 왁자지껄 떠들었다. 결국 홍봉한까지 이 일을 알게 되었다. 이주국을 보니 행색은 초라했으나 듬직한 풍채며 점잖고 기품이 있어 보였다. 홍대감은 후원으로 들어가 꿩이 떨어졌는지 알아 오라고 했다. 오래지 않아 장끼 한 마리를 들고 나오는데 화살 한 대가 목을 꿰고 있었다. 이주국은 화살을 뽑으면서, “시생 살을 찾았으니 꿩일랑 대감 식찬이나 하시지요.” 하면서 하직했다.
홍대감은 이주국을 붙들며 한담이나 하고 가라고 했다. 홍대감은 이주국이 잡은 꿩으로 안주를 만들어 한 순배 돌렸다. 그동안 이주국의 됨됨이가 퍽 마음에 들자 홍대감은, “병판으로 있는 내 아우에게 단찰로 자네 초사 자리라도 알아보도록 할 테니 잠시 회답을 기다리면서 천천히 한 잔 더 하세.” 하고 권했다. 한참 후 홍대감은 녹사가 전해 온 회답을 보더니 다소 실망하는 기색으로, “여보게, 자네가 관복이 없는가 보이. 이번 도목(都目)에는 후보자 내정이 다 끝났다네.”라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이주국이 벌떡 일어나면서, “대감마님, 아까 잡수신 꿩값을 주셔야겠습니다.” 하였다. 홍대감이 기가 막힌 표정으로, “내가 청하지도 않은 꿩을 호의로 주고, 또 자네와 함께 먹은 것인데 지금 와서 그 값을 내라는 말인가?” 하고 묻자,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어서 주십시오!” 한다. 화가 난 홍대감은, “꼴도 보기 싫으니 이자가 달라는 대로 줘서 보내라.”고 녹사에게 소리쳤다.
이주국은 천연덕스럽게 돈을 받으면서, “이만하면 돼지 한 마리는 사겠군.” 하면서 사라졌다. 이튿날 이주국은 아내에게, “여보, 오늘쯤은 초사가 되었을 테니 천릭을 내놓으시요.” 하였다. 아니나다를까, 이튿날 기별(奇別: 관보)에 ‘가을파진 권관 이주국(加乙波鎭權官 李柱國)’이라는 보직이 주어졌다. 이주국은 즉시 홍대감 댁으로 달려갔다. 하인들이 핑계를 대며 따돌리자 이주국은 칼을 빼들고 대감을 만나지 못하면 이곳에서 자결을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아 홍대감을 만날 수 있었다. 홍대감은 몹시 언짢은 기색으로, “자네 어제 꿩값은 받아 가지 않았는가?”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주국은 눈물을 흘리면서, “소생이 염치를 모르기로 어찌 대감과 함께 먹은 꿩값을 받겠습니까? 어제 대감께서 소생을 천거하셨으나, 계씨 대감께서 듣지 않았으니 이번 기회가 아니면 벼슬길에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꾀를 냈습니다. 우정 대감을 노엽게 하면 계씨 대감께 향후에라도 아까 천거했던 이주국이라는 사람을 쓰지 말라고 분부하실 것으로 생각했으며, 또 계씨 대감께서는 형님의 분부를 거역한 것이 노여워 서찰까지 보내신 것이라 생각하시게 될 테고, 필시는 시생을 기용할 것이라 짐작하여 그리하였으니 너그러이 선처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홍대감은, 이주국의 말을 듣고 보니 자신이 그러했고, 틀림없이 그런 결과가 나타난 것에 놀랐다. 홍대감은, “그럴 테지, 그렇고 말고. 처음부터 자네의 사람됨이 소인배 같지는 않았거든. 내가 한 수 졌으니 한잔 내겠네.” 하였다. 그후, 십 년이 지나는 동안 이주국의 벼슬은 정2품까지 올랐으며, 홍대감의 지극한 신임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정조로부터도 두터운 총애를 받았다. 오백당이란 당호는 대궐 춘당대에서 활쏘기를 할 때 위풍당당한 그의 풍모를 보고 정조가 친히 내려준 것이다. 낙향 후 우거했던 생가가 용인시 원삼면 문촌리에 전하고 있으며, 그의 묘역이 원삼면 문촌리에 전해 오고 있다.
[모티프 분석]
「꿩 덕에 출세한 이주국」은 이주국이 영조 때 무과에 급제했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못하다가, 꿩사냥을 계기로 벼슬을 얻어 명장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인물담은 그 인물이 실제 행한 일보다는 허구적인 내용이 인물 이야기와 결합하여 사실처럼 전해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주국과 관련한 일화는 실사와 상당 부분 유사하다. 이주국이 내외종간 구선복과 사이가 좋지 않은 점, 정조 대왕의 총애를 받아 오백당이라는 당호를 받았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실사를 바탕으로 이주국의 지혜가 부각되어 있으며, 그가 재치로써 벼슬길에 오르는 경위가 집약적으로 제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