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25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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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道宰 |
영어음역 | Lee Dojae |
이칭/별칭 | 성일,심재,운정,문정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종구 |
[정의]
조선 말기 용인의 문신이자 교육자.
[가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일(聖一), 호는 심재(心齋)·운정. 아버지는 이명익(李溟翼)이며, 양부는 이건익(李建翼)이다.
[활동사항]
강위(姜瑋)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882년(고종 19)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부수찬·강원도 암행어사 등 요직을 두루 거치다가 1886년 수구파로 몰려 고금도에 유배되었다. 1894년 갑오개혁 때 복관된 후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하여 동학농민군을 지휘하던 전봉준(全琫準)을 체포하여 서울로 압송하였다.
1898년 학부대신으로 재직할 때 지석영(池錫永)의 건의를 받아들여 한성의학교 설치를 인가함에 따라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의학 교육 기관을 세우는 데 기여하였다. 1906년 용인에 내려와 현재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언남동에 있는 용인향교(龍仁鄕校)에 유학자 맹보순(孟輔淳)과 함께 용인 지역 최초의 근대 중등 교육 기관인 명륜학교(明倫學校)를 건립하고 교장을 역임하였다. 후학 양성에 전념하던 이도재는 1909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정(文貞). 1906년 태극장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