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2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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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民俗 |
영어음역 | Minsok |
영어의미역 | Folk Customs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집필자 | 박광준 |
[정의]
경기도 용인 지역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생활 풍속.
[개설]
민속은 한 문화권 내에서 다수가 향유하고 있는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문화로 민중들이 자연적, 역사적, 사회적 환경에 대처하고 적응하는 지혜와 믿음으로 엮어낸 생활양식이다.
[마을조직]
전통 시대의 마을조직인 동계(洞契)·촌계(村契)에서는 주로 크게 세 가지 기능을 하였다. 첫째, 마을 공동의 수호신을 제사하는 사신공동체(祀神共同體)의 기능. 둘째, 수전농법 하에서 모심기, 김매기 등의 공동 노동으로서의 두레와 같은 노동공동체(勞動共同體)의 기능. 셋째, 일상생활에서 상호부조(相互扶助)·상호규검(相互規檢)하는 생활공동체(生活共同體)의 기능을 하였다.
오늘날 용인 지역은 농업 기반의 생활 형태가 아직까지 남아 있어서인지 명칭만 다를 뿐 전통시대의 마을 조직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대동회’ 또는 ‘대동회의’라는 이름으로 공동체적인 조직이 운영된다.
대동회의에서는 매년 말 마을의 중요 문제를 결정하고 마을 기금을 결산하고 이장을 선출하는 등 마을과 관련된 제반 사항에 대하여 논의를 한다. 또한, 사신공동체적 행사로서 음력 10월 초에 마을의 수호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산신제를 주관한다. 이 외에 기우제, 거리제, 느티나무제, 우물고사인 정제(井祭) 등이 있다.
노동공동체적인 것으로는 두레놀이가 있다. 대부분의 마을에서 1년의 평안을 기리기 위하여 정월 대보름에 줄다리기 행사와 두레놀이를 한다. 일터에 도착해서 논둑에 농기를 꽂고 기 앞에서 풍물고사를 지낸 후 일을 시작하였다. 일노래와 풍장으로 노동과 휴식을 조절했다. 노동에서 오는 피로를 감소시키고 흥을 돋워 능률을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신명을 통하여 현실의 고통을 극복하고 노동력을 고양시켜 나갔다.
용인에서는 긴방아와 자진방아로 속도를 조절하면서 일을 하였다. 먼 논으로 이동할 때는 노동 조직의 노동 행위가 일사불란한 규율 하에서 풍물이란 놀이를 매개로 정연하게 움직여 나갔음을 말해준다. 용인의 두레에도 반드시 풍물이 뒤따랐다. 두레가 돌아오는 시간은 그날 일의 사정에 따라 달랐는데 일반적으로 일몰시간을 기준으로 귀환했다. 돌아오는 길에 호미를 씻고 일을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풍악에 맞춰 행진하면서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로 돌아와서도 정자나무 아래 혹은 동네마당 등에서 풍물굿을 펼치면서 술 한 잔을 하고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노는 풍물판은 마을의 대동단결을 도와주는 장이었고, 아이들에게 풍물이 전수되는 마당이기도 하였다. 용인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거리제, 느티나무제 등에서 두레놀이를 놀고 있음이 현재까지도 확인되고 있음은 이 같은 놀이의 유풍이 전승된 것으로 간주된다.
용인 지역의 두레는 대개 일제시대까지 전성기를 이루었다. 해방 후에도 두레를 했으며, 한국전쟁 이후에 조금 하다가 1950년대 중반에 사라졌다. 생활공동체적인 성격의 것으로는 전통 사회에서부터 혼상(婚喪)시 부조를 가장 중요시하였다. 그중에서도 초상을 치루는 것이 가장 큰 일로 현재까지도 용인 지역에서는 과거 성행하던 ‘연반계’·‘상포계’·‘상여계’·‘그릇계’ 등과 같은 마을공동체적 조직 및 기능의 공동체적 생활양식이 마을의 청년회를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
[마을신앙]
용인 지역 마을신앙의 가장 큰 특성은 시월상달에 집중되어 있는 산제(山祭)이다. 산제는 지역에 따라 여러 명칭으로 불려지는데, 용인 지역에서는 ‘산제’·‘산제사’·‘산고사’·‘산신제’·‘산치성’·‘당제사’·‘당고사’ 등으로 다양하게 부른다. 이 같은 산제에 대한 다양한 용어의 존재 자체가 용인에서는 산제가 매우 우세하며 보편적이었음을 시사한다.
산제 외에도 마을의 공동제의로서 고목제(古木祭)·정제·느티나무제·은행나무제·미륵고사 등도 일부 마을에서 치러진다. 고목제와 정제는 대체로 정초나 열 나흗날에 모시고 느티나무제는 7월 백중날 마을의 부녀자들이 주관한다.
용인에서는 마을의 가장 중요한 공동체 제의인 산제가 일반적으로 음력 시월에 집중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신년제의 의미보다는 추수감사제의 의미로 치러지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산제는 대개 매년 시월상달 초순에 길일을 택해 모신다. 한해 가을걷이가 끝나면 마을에서 학식이 있는 사람이나 지관(地官)을 찾아가 택일을 한다.
마을 사람들 중에서 사주와 생기복덕(生氣福德)을 보아 정결한 사람으로 당주와 축관, 유사 등의 제관을 뽑는다. 제관은 선출된 날로부터 목욕재계를 하며 금기로 들어가 언행을 삼가며 부부가 합방을 하지 않는다. 이때 당주의 집에서는 금줄을 치고, 물 한 잔을 떠 놓고, 황토를 뿌려서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시킨다.
제주(祭酒)는 당샘에서 떠온 깨끗한 물로 빚고, 정성을 들여 제사에 쓸 음식을 마련한다. 산신당과 당샘에도 금줄을 치고 황토를 놓고 주변을 깨끗이 청소를 한다. 또한 이때는 제사를 지내는 사람뿐만 아니라 온 마을 사람들도 마을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동안에는 부정한 일을 하지 않는다. 제사를 지내는 날은 마을 출입이 금지되며 생선이나 젓갈류 등의 비린 음식을 먹지 않는다.
제물로는 통돼지와 통소를 올리지만 가능하면 통소를 산제의 제물로 바치려고 한다. 제주는 일반적으로 조라술을 빚어서 사용한다. 제일(祭日)이 되면 당주집에서 마련한 제수(祭需)를 가지고 산신당에 진설을 하고 분향재배·신주헌작·초헌·독축·아헌·종헌·소지 등의 절차로 제를 모시고 음복을 한다. 제사가 끝나면 제물 하나를 창호지와 천으로 싸서 산제당의 천장에 매달아 놓고, 진설했던 제물을 정리하여 가지고 마을로 내려와 마을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
[현황]
용인은 유구한 역사와 함께 전해 내려오는 문화유산을 고이 간직해 온 유서 깊은 고장이다. 21세기를 전후로 하여 용인시는 개발에 따른 문화 변동과 생태적인 환경파괴가 가장 심한 지역 중의 하나이다. 폭발적인 인구의 증가와 대규모 아파트단지 및 공단 확충, 골프장 건설 등으로 인한 도시화 및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용인 지역의 마을신앙도 여러 측면에서 변화되었다. 또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일부 마을에서는 산제의 택일에서부터 제관의 선정까지 인근의 승려에게 자문을 구하고 절에서 산제를 대행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