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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한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거주지를 옮기고 가묘를 이안하면서 지은 봉안문. 「가묘이안문(家廟移安文)」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이고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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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하며 활동한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만든 강회 규칙. 「강법(講法)」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문인이다. 모든 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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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 출신 효자 서명보가 아버지의 묘를 지키며 1761년부터 1766년까지 쓴 일기. 「거려일기(居廬日記)」는 조선 후기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출신인 효자 서명보(徐命普)[1704~1778]가 아버지의 묘를 지키며 6년간 기록한 일기이다. 저자 서명보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가 화극(華極)이며, 호가 북곽(北郭)이다. 아버지는 서익지(徐翊祉)이고,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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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 의병장 서사원이 임진왜란 시기 의병장들과 함께 지은 격문. 「격강좌열읍문(檄江左列邑文)」은 풀이하면 ‘강좌의 여러 고을에 보내는 격문’이다. 조선 후기 대구 지역의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徐思遠)[1550~1615]이 경상북도와 대구 지역 의병들의 의분심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다수의 의병장들과 함께 지은 격문이다. 저자 서사원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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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는 이훈을 추모하는 인천이씨 공도공파 문중 재실. 경모재(敬慕齋)[연경동(硏經洞)]는 인천이씨(仁川李氏) 공도공파(恭度公派) 24세손 이훈(李薰)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이훈은 인천이씨 무태(無怠)[현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서변동] 입향조인 태암(苔巖) 이주(李輈)[1556~1604]의 후손이다. 이주가 지금의 수성구 파동에서 무태로 이주한 후 후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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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는 이주를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된 재실. 경암재(景巖齋)는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의병장 태암(苔巖) 이주(李輈)[1556~1604]를 추모하는 재실이다. 이주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경임(景任), 호는 태암(苔巖)이다.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서 태어나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1532~1585]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낙재(樂齋)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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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인 효자 서명보의 증려를 위하여 조진민과 서희순이 1834년과 1841년 올린 계문. 계장 초고 뒤에 붙이는 글은 조선 후기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출신인 효자 서명보의 증려를 위하여 조진민과 서희순이 올린 계문이다. 서명보(徐命普)[1704~1778]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가 화극(華極)이며, 호가 북곽(北郭)이다. 아버지는 서익지(徐翊祉)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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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위치한 구암서원에 배향된 서사원이 기록한 공부에 대한 짧은 글. 「공부차록(工夫箚錄)」은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위치한 구암서원(龜巖書院)에 배향된 의병장이며 학자인 서사원(徐思遠)[1550~1615]이 기록한 공부에 대한 짧은 글과 도설 자료 모음집이다. 서사원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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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구광한의 본관은 능성(綾城)[綾州], 자는 영숙(永叔), 호는 금와(琴窩)이다. 아버지는 구만적(具萬迪)이고, 어머니는 인천채씨(仁川蔡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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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열녀. 자미(者未)[?~?]는 구귀징(具龜徵)[1661~1687]의 노비였다. 스무 살 되던 해인 1687년(숙종 13)에 구귀징이 죽자 상복을 입은 뒤에 머리를 얹었다. 부모가 그 까닭을 묻자 “상전이 한 번 저를 돌아보았으니, 어찌 남이 알지 못한다고 하여 내 마음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고, 문밖을 나가지 않고 3년을 지냈다. 부모가 다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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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구도징(具道徵)[1667~1717]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천원(天源), 호는 포금정(抱琴亭)이다. 아버지는 구시철(具時哲)이고, 어머니는 영천이씨(永川李氏)이다. 구홍리(具洪履)가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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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구문상(具文祥)[1585~1657]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창숙(彰叔)이다. 할아버지는 종사랑 구대성(具大成)이고, 아버지는 훈련원 첨정(訓鍊院僉正) 구회신(具懷愼)이다. 어머니는 숙인(淑人) 나주나씨(羅州羅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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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구문한(具文漢)[1734~1771]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장숙(章叔), 호는 화호(花湖)이다. 아버지는 구만권(具萬權)이고, 어머니는 선산김씨(善山金氏)이다. 동생은 구명한(具明漢)·구주한(具柱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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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문관. 구성옥(具性玉)[1724~1784]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형중(瑩仲), 호는 농아(聾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구인경(具仁慶)이고, 할아버지는 구시준(具時準)이다. 아버지는 구인징(具麟徵)이고, 어머니는 임이옹(任爾雍)의 딸 풍천임씨(豊川任氏)이다. 부인은 이경욱(李慶郁)의 딸 성주이씨(星州李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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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구시웅(具時雄)[1625~1671]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적만(敵萬), 호는 포재(蒲齋)이다. 아버지는 구인계(具仁繼)이고, 어머니는 인천채씨(仁川蔡氏)이다. 동생은 구시걸(具時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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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구용징(具龍徵)[1658~1715]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대현(大見), 호는 경타재(警惰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첨정 구회신(具懷愼)이고, 할아버지는 구인계(具仁繼)이다. 아버지는 구시웅(具時雄)이고. 어머니는 전유익(全有翼)의 딸 옥천전씨(沃川全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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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구인계(具仁繼)[1607~1662]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효중(孝仲), 호는 치암(癡庵)이다. 할아버지는 구대성(具大成)이고, 아버지는 첨정 구회신(具懷愼)이다. 어머니는 풍천임씨(豐川任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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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 거주한 열녀 구정리(具鼎履)의 처 이씨(李氏)[1695~1729]의 본관은 진성(眞城)이고, 아버지는 이렴(李濂)이다. 송재(松齋) 이우(李堣)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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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구홍리(具洪履)[1692~1779]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순경(舜卿), 호는 동재(東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구문상(具文祥)이고, 할아버지는 종사랑 구시철(具時哲)이다. 아버지는 증호조참판 구도징(具道徵)이고,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 부림홍씨(缶林洪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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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무관. 구회신(具懷愼)[1564~1634]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경중(敬仲)이다. 아버지는 종사랑 구대성(具大成)이고, 어머니는 옥천황씨(玉泉黃氏)이다. 부인은 풍천임씨(豐川任氏)이고, 아들은 구인계(具仁繼)이다. 고려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인 구홍(具鴻)의 8대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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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이석규를 추모하는 재실. 금서재(琴西齋)는 개항기의 학자 이석규(李錫奎)[1816~1892]를 기리기 위하여 지역 유림과 인천이씨(仁川李氏) 공도공파 문중이 힘을 합쳐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이석규의 자는 치옥(穉玉)이고, 호는 금서재(琴西齋)이다. 부모에 대한 효성과 형제간의 우애가 깊었으며, 학문에도 힘을 써 학덕으로 이름이 높았다. 특히 『심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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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 효자 서명보의 벼슬이 추증되어 분황할 때 1799년 이의조가 서명보의 묘 앞에서 고유하기 위하여 지은 글. 「기미년 9월 12일 분황 고유문(己未年九月十二日焚黃告由文)」을 지은 이의조(李宜朝)[1727~1805]의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자는 맹종(孟宗)이며, 호는 경호(鏡湖)이다. 이재(李縡)[1680~1746]와 송능상(宋能相)[1710~1758]의 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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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 문인 서사원이 1599년 청주의 불굴동에 우거하면서 지은 한시. 「기해원월입춘일 여방류접서원청주불굴지동 완열주부자인설도 유감이득일절(己亥元月立春日, 余方流接西原淸州不屈之洞, 翫閱朱夫子仁說圖, 有感而得一絶)」를 쓴 서사원(徐思遠)[1550~1615]은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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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동호동에 있는 조시무의 추모 재사. 낙금당은 통덕랑 조시무(趙時珷)[1633~1690]의 생전 강학소이자 추모 재사이다. 조시무는 함안조씨 원대 입향조인 연담 조함장의 아들이며, 지금의 대구광역시 서구 원대동에서 태어났다. 8세 때 소학을 배우고 15세 때 형 만취(晩翠) 조시원(趙時瑗)과 함께 미수 허목에게 나아가 글을 배웠다. 본래 조시무는 자질이 뛰어나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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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대구 출신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기록한 일기문학.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사원은 임진왜란기(壬辰倭亂期)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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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존유를 시조로 하고 구회신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의 세거 성씨. 능성구씨(綾城具氏)의 시조는 고려 고종 때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을 역임한 구존유(具存裕)이다. 구존유는 전라남도 화순군 능성(綾城)에 세거한 이족(吏族)이었다. 부인은 몽골의 침략으로 남송(南宋)이 망할 때 고려로 망명하여 능성에 정착한 주잠(朱潛)의 딸이다. 주잠은 주자(朱子)의 증손자로 한림학사(翰林學士)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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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 살았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대구부사 김윤안에게 보내는 편지. 「답김대구(答金大丘)」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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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정구가 조선 후기 문인 서사원과 나눈 문답과 편지. 「답서행보(答徐行甫)」[한강집]를 쓴 정구(鄭逑)[1543~1620]는 본관이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과 조식(曺植)의 문인이다. 모든 방면의 학문에 정통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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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만년에 강학 활동을 펼쳤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손린에게 보낸 격려 편지. 「답손계진(答孫季進)」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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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손처눌과 나눈 문답과 편지. 「답손기도(答孫幾道)」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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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이윤우와 나눈 문답과 편지. 「답이무백(答李茂伯)」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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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이서와 나눈 문답과 편지. 「답이이직(答李以直)」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문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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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채몽연과 나눈 문답. 「답채몽연(答蔡夢硯)」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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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재실. 대구 노곡동 영모재(大邱魯谷洞永慕齋)는 묵와(默窩) 이후남(李厚楠)[1579~1631]을 추모하고자 조선 후기에 세워진 재실이다. 이후남은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9세손이며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지역에 처음으로 정착한 입향조이다. 이후남은 노곡동에서 거주하면서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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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팔달동에 있는 1736년에 대구읍성 성벽을 쌓을 돌을 채석하던 곳. 1735년(영조 11)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부사 민응수(閔應洙)[1684~1750]가 대구읍성의 부재를 다듬으며 채석할 장소를 물색하여 현 대구광역시 북구 팔달동 산14-1 일대의 돌산을 확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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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도남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창렬각. 덕산 이씨 창렬각(德山李氏彰烈閣)은 일제강점기 열녀였던 덕산 이씨의 효행과 정절을 후손들이 잊지 않고자 건립된 창렬각이다. 이씨는 인천이씨(仁川李氏) 이재엽(李載燁)의 아내로서, 시집을 가기 전부터 부모에게 효도하고 동기간에 우애가 있는 등 모든 예법에 어긋남이 없었으며, 시집을 가서 남편에게 도리를 다하였다. 1921년 11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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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도남동에 있는 전이갑·전의갑을 추모하는 재실. 도남재(道南齋)는 고려 개국공신 전이갑(全以甲)·전의갑(全義甲)을 기리기 위하여 우헌(寓軒) 전민련(全敏連)[1546~1615]과 아들인 거옹(巨翁) 전사헌(全士憲)[1565~1618]이 건립한 재실이다. 전민련·전사헌 부자는 선대의 고향이었던 강원도 정선을 떠나 팔공산 자락 도남동으로 이거하였다. 이후 지척의 팔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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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인천채씨 소감공파 파조 채영의 절의를 기리는 재실. 도례재(道禮齋)는 은수(隱叟) 채영(蔡泳)[?~?]의 절의를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1683년(숙종 9)에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채영은 ‘두문동(杜門洞) 72현’ 중 한 사람인 인천채씨(仁川蔡氏) 중시조 다의당(多義堂) 채귀하(蔡貴河)의 맏아들이고, 인천채씨 대구 입향조인 채원길(蔡元吉)의 손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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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여러 책에서 가려 뽑은 독서에 대한 기록. 「독서첩(讀書帖)」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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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철을 시조이자 입향조로 하는 대구 지역의 세거 성씨. 동래정씨(東萊鄭氏)의 시조는 사로국(斯盧國) 6부 촌장으로 정(鄭)씨 성을 하사받았던 지백호(智伯虎)의 후손 정회문(鄭繪文)이다. 이후 고려 초 보윤(甫尹)을 지낸 정지원(鄭之遠)을 1세조로 삼아 대를 이어 세거한 동래(東萊)를 본관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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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구암서원에 배향된 서사원이 1603년 9월 경상북도 동남쪽을 유람하면서 기록한 일기. 「동유일록(東遊日錄)」을 쓴 서사원(徐思遠)[1550~1615]은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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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 문인 학자인 이익룡이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는 화암에 올라 연경서원을 바라보고 지은 한시. 「등화암(登畫巖)」의 저자 이익룡(李翼龍)[1732~1794]의 본관은 영천(永川)이며, 자는 이오(而五)이고, 호는 요산당(樂山堂)이다.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대암리(臺巖里)에서 태어났다. 이익룡은 만년에 요산당(樂山堂)을 지어 학문 연마에 매진하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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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구암서원에 제향된 조선 후기 문신 서성이 정구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 「만장(輓章)」을 쓴 서성(徐渻)[1558~1631]의 본관은 대구(大丘)이고, 자는 현기(玄紀), 호는 약봉(藥峯)이다. 아버지는 서해(徐嶰)이고, 어머니는 고성이씨(固城李氏) 이고(李股)의 딸이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이이(李珥)[1536~1584]의 문인이다. 암행어사, 형조판서, 병조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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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말샘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말샘의 전설」은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말샘과 임진왜란 때 활약한 김덕령 장군과 관련되어 전하여 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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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매천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매양서원(梅陽書院)은 북구 칠곡 지역에서 세칭 ‘매남송씨’ 혹은 ‘칠곡송씨’로 불리는 야성송씨 아헌공파 문중의 서원이다. 매양서원에는 아헌공파의 파조인 아헌(啞軒) 송원기(宋遠器)[1548~1615]를 주향으로, 송원기의 5세손인 매헌 송명기와 6세손 남촌 송이석이 종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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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서변동 지역에 있는 능성구씨 세거지. 무태리(無怠里)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과 관련이 있는 지명이다. 왕건이 신라를 구원하기 위하여 경주로 갈 때 무태에서 군사들과 함께 유숙을 하였는데, 왕건이 경계하던 병사들에게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라[警軍曰無怠].”라고 한 말에서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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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각. 밀양 박씨 창렬각은 조선 후기 순조(純祖) 때의 열부였던 밀양 박씨(密陽朴氏)의 정절과 효행을 기리고자 건립한 정려각이다. 박씨는 인천이씨(仁川李氏) 이용섭(李龍燮)의 아내로서 중년에 남편을 여의고 낳은 자식이 하나도 없었다. 당시 자신의 손으로 초상을 치르며 장례를 직접 보살피었다. 5촌 조카를 후사(後嗣)로 세워 초상을 맡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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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년 대구 출신 학자인 손처눌이 이시발, 조홍립과 함께 대구의 화암을 유람하며 지은 한시. 「배이방백양구 조통판극원 홍립 유화암(陪李方伯養久 曺通判克遠 弘立 遊畫巖)」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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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 있던 연경서원에 정구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1622년 학자 장현광이 지은 고유문. 「봉안한강연경시 고퇴계선생문(奉安寒岡硏經時 告退溪先生文)」을 쓴 장현광(張顯光)[1554~1637]은 본관이 인동(仁同)이며, 자는 덕회(德晦)이고, 호는 여헌(旅軒)이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아버지는 장열(張烈)이고, 어머니는 경산이씨(京山李氏) 이팽석(李彭錫)의 딸이다. 여러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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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 출신인 효자 서명보가 사후 벼슬이 추증되면서 분황할 때 1799년 경축연에서 이의조가 지은 한시. 서명보(徐命普)[1704~1778]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화극(華極)이며, 호는 북곽(北郭)이다. 아버지는 서익지(徐翊祉)이고, 어머니는 오산김씨(鰲山金氏) 김억추(金億秋)의 딸이다. 서명보는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고 인자하며 효성스럽고 근신하였다. 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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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인 정구의 마지막 강학소. 사양정사(泗陽精舍)의 전신인 사양서당(泗陽書堂)[경상북도 문화재자료]은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 사후 30년인 1651년(효종 2)에 중건되어 정구를 추모하고 강학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이후 1964년(숙종 20)에 지금의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로 이건하고 사양서원(泗陽書院)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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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을 하던 손처눌이 서원에서 소회를 읊은 한시. 「서당진예 신기서추 음시제학자(書堂塵穢 晨起鋤箒 吟示諸學者)」를 쓴 손처눌(孫處訥)[1553~1634]은 본관이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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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정구가 1607년 도동서원 액판을 현액하면서 지은 글. 「서도동서원액판하(書道東書院額板下)」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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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효자. 서명보(徐命普)[1704~1778]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화극(華極), 호는 북곽(北郭)이다. 아버지는 서익지(徐翊祉)이고, 어머니는 오산김씨(鰲山金氏)이다. 의병장 서사진(徐思進)의 5대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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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출신인 효자 서명보를 위하여 1802년 김희순이 지은 묘갈명. 서명보(徐命普)[1704~1778]는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가 화극(華極)이며, 호가 북곽(北郭)이다. 아버지는 서익지(徐翊祉)이고, 어머니는 오산김씨(鰲山金氏) 김억추(金億秋)의 딸이다. 서명보는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고 인자하며 효성스럽고 근신하였다. 7세에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고,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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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출신인 조선 후기 효자 서명보를 위하여 이의조가 쓴 행장. 「서명보 행장(徐命普 行狀)」을 쓴 이의조(李宜朝)[1727~1805]의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자는 맹종(孟宗)이며, 호는 경호(鏡湖)이다. 이재(李縡)와 송능상(宋能相)의 문인이다.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전심하였다. 자신의 학문적 기반을 바탕으로 저술 활동뿐만 아니라, 방초정(芳草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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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각. 서명보 효자 정려각(徐明普 孝子 旌閭閣)은 숙종 때 효자인 서명보[1704~1778]의 효행을 기리고자 1802년(순조2)에 건립된 정려각이다. ‘서명보 효자각’이라고도 일컫는다. 서명보는 본관이 달성(達城)이며, 자는 화극(華極)이고 호는 북곽(北郭)이다. 서명보는 아버지 서익지(徐翊祉)의 병이 깊어 24년간 간병하였는데,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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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인천이씨 세거지. 인천이씨(仁川李氏)는 허씨(許氏)에서 갈린 분적종(分籍宗)으로 경원이씨(慶源李氏) 또는 인주이씨(仁州李氏)로도 불렸다. 이허기(李許奇)를 시조로 받들고 식읍으로 받았던 인천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고려 중엽 이자의(李資義)[?~1095]와 이자겸(李資謙)[?~1126]부터 조선 초기 이징옥(李澄玉)[1399~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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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서사선은 예빈시 직장 서필(徐弼)의 증손으로, 조부는 서응기(徐應期)이고, 아버지는 남간(南澗) 서식(徐湜)[1530~1593]이다. 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 박란(朴鸞)의 딸이다. 부인은 진산진씨(珍山陳氏) 진문효(陳文孝)의 딸이다. 슬하에 자식이 없어 종형 서사건(徐思建)의 아들로 가계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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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정자. 서산정(西山亭)은 영조·정조 때 사인(士人) 이경채(李景采)[1730~1799]를 추모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정자이다. 이경채의 자는 사행(士行), 호는 만회헌(晩悔軒), 본관은 인천(仁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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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문관. 서성(徐渻)[1558~1631]은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현기(玄紀), 호는 약봉(藥峯)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장령 서팽소(徐彭召)이고, 할아버지는 예조참의 서고(徐固)이다. 아버지는 서해(徐嶰)이고, 어머니는 청풍군수 이고(李股)의 딸 고성이씨(固城李氏)이다. 부인은 송령(宋寧)의 딸 여산송씨(礪山宋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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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장. 서재겸(徐再謙)[1557~1617]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화익(和益), 호는 죽계(竹溪)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좌통례 서진손(徐震孫)이고, 할아버지는 서미수(徐眉壽)이다. 아버지는 습독(習讀)을 지낸 서진(徐津)이고, 어머니는 부림홍씨(缶林洪氏)이다. 형은 서득겸(徐得謙)이고, 아들은 서유원(徐惟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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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을 전개한 서사원이 선사정사를 만들고 정한 규칙. 「선사정사학규(仙査精舍學規)」를 쓴 서사원(徐思遠)[1550~1615]은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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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에 있었던 조선 전기에 건립된 정자. 세심정(洗心亭)은 충청도사 전응창(全應昌)[1529~1586]이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 금호강 기슭에 건립한 정자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5년(선조 36)에 아들 전한(全僩)[1570~?]이 중건하였으나 영조 연간에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세심정은 금호강을 건너 연경서원(硏經書院)으로 가는 길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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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고려 후기 충신 구홍과 조선 후기 의병장 구회신을 기리는 재실. 송계당(松溪堂)은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재실이다. 고려 후기의 충신인 두문동(杜門洞) 송은(松隱) 구홍(具鴻)과 조선 후기 임진왜란 당시 대구에서 의병을 일으킨 8대손 계암(溪巖) 구회신(具懷愼)[1564~1634]의 절개와 위업을 기리고자 1659년(효종 10)에 세운 후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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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송명기(宋命基)[1680~1775]의 본관은 야로(冶爐)이며, 자는 정부(定夫), 호는 매헌(梅軒)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송시철(宋時哲)이고, 할아버지는 송세은(宋世殷)이다. 아버지는 송희(宋熙)이고,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이다. 부인은 이달신(李達新)의 딸 성주이씨(星州李氏)이며, 아들은 송이석(宋履錫)·송이진(宋履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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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에 정착한 학자. 송원기(宋遠器)[1548~1615]의 본관은 야로(冶爐)이며, 자는 학무(學懋), 호는 후촌(後村) 또는 아헌(啞軒)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송방현(宋邦賢)이고, 할아버지는 송응규(宋應奎)이다. 아버지는 송사호(宋師顥)이고, 어머니는 성주도씨(星州都氏)이다. 부인은 이윤(李潤)의 딸 인천이씨(仁川李氏)이다. 형은 송원도(宋遠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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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송이석(宋履錫)[1698~1782]의 본관은 야로(冶爐)이며, 자는 백수(伯綏), 호는 남촌(南村)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송세은(宋世殷)이고, 할아버지는 송희(宋熙)이다. 아버지는 송명기(宋命基)이고, 어머니는 이달신(李達新)의 딸 성주이씨(星州李氏)이다. 부인은 정치운(鄭致雲)의 딸 청주정씨(淸州鄭氏)이며, 슬하에 3남 4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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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 의병장 서사원이 1597년 순찰사에게 군량 조달을 부탁 받고 지은 군량미 요청 글. 「승차걸속문(承差乞粟文)」의 저자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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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구국 활동을 하던 서사원이 1597년 체찰사의 명을 받고 남하하는 도중 유생을 만나 지어 준 한시. 「승체찰사분부령병남하, 유유생수업자휴주출전, 인증근체(承體察使分付領兵南下, 有儒生受業者携酒出餞, 因贈近軆)」를 쓴 서사원(徐思遠)[1550~1615]은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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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8~1761년 동안 대구 출신인 효자 서명보가 아버지의 병환을 돌보면서 쓴 일기. 「시탕일기(侍湯日記)」의 저자 서명보(徐命普)[1704~1778]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화극(華極)이며, 호는 북곽(北郭)이다. 아버지는 서익지(徐翊祉)이고, 어머니는 오산김씨(鰲山金氏) 김억추(金億秋)의 딸이다. 서명보는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고 인자하며 효성스럽고 근신하였다. 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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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소장되어 있는 중국 병법서 『삼략(三略)』의 1711년 간행 언해본. 신간삼략언해(新刊三略諺解)는 중국의 고대 병법서인 『삼략(三略)』을 이상징(李商徵)이 한글로 언해한 내용을 덧붙여 1711년에 충청도 홍주(洪州)의 신평(新坪)에서 간행한 것이다. 조선시대에 『삼략』은 여러 번 번역되어 다수의 판본이 전해지고 있는데 대구광역시 북구 소장본은 가장 이른 시기의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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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이문성을 추모하는 재실. 심수재(心輸齋)는 인천이씨(仁川李氏) 무태(無怠)[현 북구 동변동·서변동] 입향조인 태암(苔巖) 이주(李輈)의 아버지 소재(疎齋) 이문성(李文星)[1531~1571]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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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대구 지역의 연경서원을 채영걸이 방문하고 이황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알연경서원 용퇴계선생화암운(謁硏經書院 用退溪先生畵巖韻)」를 쓴 채영걸(蔡瀛傑)[1611~1649]은 본관이 인천(仁川)이고, 자는 백등(伯登)이며, 호는 시산(是山)이다. 아버지는 채무(蔡楙), 어머니는 안동김씨 김경건(金慶建)의 딸이다.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이다. 1632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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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정구가 주희의 「무이구곡가」 운자를 활용하여 지은 10수의 한시. 「앙화주부자무이구곡시운 십수(仰和朱夫子武夷九曲詩韻 十首)」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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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호연지기를 기르는 위하여 지은 글. 「양호첩(養浩帖)」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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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손린에게 보낸 편지. 「여손계진(與孫季進)」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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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의병장이며 학자인 서사원이 손처눌에게 보내는 편지. 「여손처눌(與孫處訥)」을 쓴 서사원(徐思遠)[1550~1615]은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사원은 임진왜란기를 중심으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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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도성유에게 보낸 편지. 「여도정언(與都廷彦)」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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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서사원에게 보낸 편지. 「여서행보(與徐行甫)」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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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의 연경서원을 조선 후기 학자인 채치룡이 방문하고 화암에 올라 지은 한시. 「여제현 알연경서원 등화암(與諸賢 謁硏經書院 登畫巖)」를 쓴 채치룡(蔡致龍)[1727~1785]은 본관이 인천(仁川)이고, 자는 운오(雲五)이며, 호는 양매당(養梅堂)이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매곡리 출신이다. 아버지는 채두명(蔡斗命)이고, 어머니는 부림홍씨 홍응하(洪應夏)의 딸이다. 친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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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연경서원을 노래한 퇴계 이황의 한시를 조선 후기 학자 송명기가 차운하여 지은 한시. 「연경서원 경차퇴계선생운(硏經書院 敬次退溪先生韻)」의 배경 지역인 연경서원(硏經書院)은 대구 지역에 최초로 지어진 서원으로, 이황(李滉)[1501~1570]·정구(鄭逑)[1543~1620]·정경세(鄭經世)[1563~1633] 3인과 함께 별도로 향현사(鄕賢祠)를 세워 전경창(全慶昌)[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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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 정구가 연경서원에 이황의 위판을 봉안하면서 쓴 글. 「연경서원봉안퇴계이선생문(硏經書院奉安退溪李先生文)」을 쓴 정구(鄭逑)[1543~1620]은 본관이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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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5년 대구 출신 전경창의 신주를 연경서원에 봉안하면서 조선 후기 학자 서사선이 지은 축문. 「연경서원 봉안문(硏經書院 奉安文)」을 쓴 서사선(徐思選)[1579~1651]은 본관이 달성(達城)이며, 자는 정보(精甫)이고, 호는 동고(東皐)이다. 대구부(大邱府) 남산리(南山里)[현재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일대]에서 태어났다.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문하에서 수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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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있었던 조선 후기 연경서원의 이건을 기록한 편액. 연경서원 이건기문 편액(硏經書院移建記文篇額)은 조선 후기에 대구 지역의 유학 교육에서 중추적인 구실을 담당하였던 연경서원의 1775년 이건에 관하여 기록한 편액이다. 대구 지역 최초의 서원이었던 연경서원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1563년(명종 18)에 건립을 시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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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연경서원을 노래한 퇴계 이황의 한시를 1621년 조선 후기 학자 김지남이 차운하여 지은 한시. 「연경서원 차퇴계기후 절구운 시제생(硏經書院 次退溪記後 絶句韻 示諸生)」을 쓴 김지남(金止男)[1559~1631]은 본관이 광산(光山)이며, 호는 용계(龍溪)이고 자는 자정(子定)이다. 1591년 별시(別試) 대과(大科)에 합격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호남으로 내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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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년 대구의 연경서원을 중건하면서 조선 후기 문신 이시발이 지은 한시. 「연경서원 차퇴계선생운(硏經書院 次退溪先生韻)」을 쓴 이시발(李時發)[1569~1626]은 본관이 경주(慶州)이며, 자는 양구(養久)이고, 호는 벽오(碧梧)이다. 이덕윤(李德胤)의 문인이고, 정경세(鄭經世)와 교유하였다. 1601년 경상감사가 되어 4년간 유임하였다. 저서로 『벽오유고(碧梧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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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의 연경서원을 조선 후기 학자 도성유가 참배하고 이황의 한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연원첨배후 경차노선생화암운(硏院瞻拜後 敬次老先生畵巖韻)」를 쓴 도성유(都聖兪)[1571~1649]는 본관이 성주(星州)이고, 자는 정언(廷彦)이며, 호는 양직자(養直子)이다.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과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이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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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각. 영양 남씨 정렬각(英陽南氏旌烈閣)은 조선 후기 영조(英祖) 때 효부이자 열녀였던 영양 남씨의 극진한 효행과 정절을 기리고자 1797년(정조 2)에 건립한 정려각이다. 남씨는 인천이씨(仁川李氏) 이만섭(李萬燮)의 아내로서 아름다운 덕성과 도량이 남달라 평소의 행실이 예의에 어긋나지 않았으며 시부모를 섬기면서 정성을 다하였고 남편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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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는 이협을 추모하는 재실. 오사재(五思齋)는 이협(李莢)[1603~1682]을 기리기 위하여 인천이씨(仁川李氏) 회와공 종중에서 이협의 묘소 아래에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이협의 자는 요서(堯瑞), 호는 회와(悔窩)이다. ‘오사재’라는 명칭은 『예기(禮記)』「제의(祭義)」 편의 “제계(齊戒)를 하는 날에는 부모님이 거(居)하시던 곳을 생각하며, 웃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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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오선생예설분류』 뒤에 붙여 쓴 발문. 「오선생예설분류발(五先生禮說分類跋)」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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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지은 도동서원의 규범. 「원규 위도동작(院規爲道東作)」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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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도남동에 있는 이희성, 이희효 형제의 효자 정려각. 유화당 정효각(有華堂 旌孝閣)은 유화당의 솟을대문을 말하는 것으로 솟을대문 안쪽 상부에 정려 편액과 정려 기문이 걸려 있다. ‘유화당’이란 ‘국화가 가득한 집’이라는 뜻으로 현재도 국화를 가꾸고 있다. 솟을대문에 정려 편액이 설치된 형태의 정려각을 일명 ‘솟을대문형 정려각’이라고 한다. 매국(梅菊) 이희성(李希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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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 학자인 최흥립이 윤광안의 「차퇴도선생연경서원운」에 화답하여 지은 한시. 「윤방백 광안 차퇴도선생연경서원운 여급추 화(尹方伯光顔次退陶先生硏經書院韻余及追和)」의 저자 최흥립(崔興岦)[1736~1809]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흥교(興敎), 자는 산보(山甫), 호는 천옹(喘翁)이다.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출신이다.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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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문관. 은몽상(殷夢相)[1653~?]의 본관은 행주(幸州)이며, 자는 뇌경(賚卿)이다. 아버지는 은유삼(殷有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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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을 한 문인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연경서원의 퇴계 이황 봉안문을 의작하여 지은 글. 「의연경서원퇴계선생봉안문(擬硏經書院退溪先生奉安文)」을 쓴 서사원(徐思遠)[1550~1615]은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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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이석규(李錫奎)[1816~1892]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치옥(穉玉), 호는 금서재(琴書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시채(李時采)이고, 할아버지는 이학섭(李學燮)이다. 아버지는 이기각(李基珏)이고, 어머니는 경주김씨(慶州金氏)이다. 부인은 김해김씨(金海金氏)이며, 아들은 이우춘(李遇春)·이해상(李海祥)이다. 형은 이석구(李錫龜)이고, 동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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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에 이거하여 연경서원 건립을 주관한 학자. 이숙량(李叔樑)[1519~1592]의 본관은 영천(永川)이며, 자는 대용(大用), 호는 매암(梅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효손(李孝孫)이고, 할아버지는 이흠(李欽)이다. 아버지는 판중추부사 이현보(李賢輔)이고, 어머니는 권효성(權孝誠)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부인은 이복신(李復新)의 딸 광주이씨(廣州李氏)이다. 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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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문관. 이약채(李若采)[1727~1782]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성흠(聖欽), 호는 행휴재(行休齋) 또는 속계거사(涑溪居士)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협(李莢)이고, 할아버지는 이영태(李英泰)이다. 아버지는 이인항(李仁恒)이고, 어머니는 이재휘(李載輝)의 딸 영천이씨(永川李氏)이다. 부인은 박필정(朴弼廷)의 딸 반남박씨(潘南朴氏)이며, 아들은 이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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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이양채(李亮采)[1714~1796]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군약(君若), 호는 취몽헌(醉夢軒)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협(李莢)이고, 할아버지는 이영화(李英華)이다. 아버지는 이인제(李仁濟)이고, 어머니는 충주박씨(忠州朴氏)이다. 동생은 이진채(李震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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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이억상(李億祥)[1835~1905]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대요(戴堯), 호는 수헌(守軒)이다. 아버지는 이석린(李錫麟)이고, 어머니는 문화류씨(文化柳氏)이다. 아들은 이병운(李柄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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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이인제(李仁濟)[1685~1761]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여원(汝元), 호는 만오당(晩悟堂) 또는 관어정(觀魚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승휘(李承輝)이고, 할아버지는 이협(李莢)이다. 아버지는 이영화(李英華)이고,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이다. 부인은 충주박씨(忠州朴氏)이며, 아들은 이양채(李亮采)·이진채(李震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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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에서 활동한 학자이자 의병장. 이주(李輈)[1556~1604]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경임(景任), 호는 태암(苔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희증(李希曾)이고, 할아버지는 이고(李翶)이다. 아버지는 이문성(李文星)이고, 어머니는 창원황씨(昌原黃氏)이다. 부인은 영양최씨(英陽崔氏)이며, 아들은 이승휘(李承輝)·이정휘(李挺輝)·이동휘(李東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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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이춘섭(李春燮)[1737~1815]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자정(子正), 호는 경소재(景蘇齋) 또는 천서와(川西窩)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영화(李英華)이고, 할아버지는 만오당(晩悟堂) 이인제(李仁濟)이다. 아버지는 이양채(李亮采)[1714~1796]이며, 어머니는 박서기(朴瑞麒)의 딸 울산박씨(蔚山朴氏)이다. 부인은 박주한(朴冑漢)의 딸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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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이화상(李華祥)[1842~1915]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재중(載重), 호는 백운정(白雲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학섭(李學燮)이고, 할아버지는 이기각(李基珏)이다. 아버지는 이석귀(李錫龜)이고, 어머니는 서진호(徐鎭浩)의 딸 달성서씨(達城徐氏)이다. 형은 이의상(李宜祥)이고, 동생은 이태상(李泰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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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허기를 시조로 하고 이말흥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의 세거 성씨. 인천이씨(仁川李氏)의 시조는 이허기(李許奇)이다. 이허기는 본래 김해허씨(金海許氏)였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14년(755년) 사신으로 당나라에 파견되었는데, 756년 안록산의 난 때 촉으로 피난하는 당 현종(玄宗)을 호종(扈從)하였다. 757년 난이 평정되어 도성으로 돌아온 현종이 허기에게 상으로 서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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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의병 활동을 한 손처눌이 연경서원에서 곽재겸을 기다리면서 지은 한시. 「재연원 사인요곽익보(在硏院 使人邀郭益甫)」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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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문관. 전응창(全應昌)의 본관은 경산(慶山)이며, 자는 성지(成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전순손(全順孫)이고, 할아버지는 전복견(全復堅)이다. 아버지는 장사랑 전순(全珣)이고, 어머니는 송식(宋軾)의 딸 김해송씨(金海宋氏)이다. 부인은 선산김씨(善山金氏)이며, 아들은 전길(全佶)·전엄(全儼)·전한(全僴)·전윤용(全潤龍)·전종용(全從龍)이다. 동생은 사헌부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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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전한(全僩)[1570~?]의 본관은 옥산(玉山)이며, 자는 의보(毅甫), 호는 호암(湖菴)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전복견(全復堅)이고, 할아버지는 전순(全珣)이다. 아버지는 도사 전응창(全應昌)이고, 어머니는 선산김씨(善山金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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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김굉필 묘역 주변에 투장이 발생하여 1618년 경상감사에게 산송을 제기한 글. 「정감사문(呈監司文)」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김굉필(金宏弼)[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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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에 이주하여 강학한 학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철산군수 정윤증(鄭胤曾)이고, 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정응상(鄭應祥)이다. 아버지는 충좌위(忠佐衛) 부사맹 정사중(鄭思中)이고, 어머니는 이환(李煥)의 딸 성주이씨(星州李氏)이다. 부인은 이수(李樹)의 딸 광산이씨(光山李氏)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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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정기(鄭錡)[1574~1642]의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청보(淸甫), 호는 금재(琴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어모장군 정세검(鄭世儉)이고, 할아버지는 정사철(鄭師哲)이다. 아버지는 정광천(鄭光天)이고, 어머니는 참봉 이안인(李安仁)의 딸 벽진이씨(碧珍李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허선술(許善述)의 딸 하양허씨(河陽許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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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인 효자 서명보를 표창하기 위하여 1797년 홍이간이 지어 경상감영으로 올린 계장. 서명보(徐命普)[1704~1778]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가 화극(華極)이며, 호가 북곽(北郭)이다. 아버지는 서익지(徐翊祉)이고, 어머니는 오산김씨(鰲山金氏) 김억추(金億秋)의 딸이다. 서명보는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고 인자하며 효성스럽고 근신하였다. 일곱 살에 어머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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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1617년에 상소하기 위하여 지은 소문. 「정사의상소(丁巳擬上疏)」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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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정수(鄭錘)[1573~1612]의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평보(平甫), 호는 양졸재(養拙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세온(鄭世溫)이고, 할아버지는 정사주(鄭師周)이다. 아버지는 정여강(鄭汝康)이고, 어머니는 현감 류예원(柳禮源)의 손녀 서산류씨(瑞山柳氏)이다. 부인은 이승(李承)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형은 정용(鄭鏞)이고, 동생은 정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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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정익동(鄭翊東)[1735~1795]의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맹양(孟陽), 호는 겸재(謙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시걸(鄭時杰)이고, 할아버지는 정은필(鄭殷弼)이다. 아버지는 정유점(鄭惟漸)이고, 어머니는 종사랑 박중윤(朴重胤)의 딸 밀양박씨(密陽朴氏)이다. 첫 번째 부인 풍산유씨(豐山柳氏)와의 사이에 딸 한 명을 두었고, 두 번째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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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정천주(鄭天澍)[1596~1661]는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백화(伯和), 호는 경한재(景寒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사주(鄭師周)이고, 할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달성군 하빈에서 의병을 일으켜 충의위(忠義衛)에 제수되고 가선대부 병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에 증직된 정여강(鄭汝康)이다. 아버지는 동래정씨(東萊鄭氏) 칠곡(漆谷) 입향조(入鄕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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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동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조선 후기 학자 정구가 거처를 옮기면서 산신에게 올린 제문. 「제사수주산문 칠곡(祭泗水主山文 漆谷)」을 쓴 정구(鄭逑)[1543~1620]는 본관이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과 조식(曺植)의 문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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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정구가 1617년 서사원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 「제서행보 사원 문(祭徐行甫 思遠 文)」를 쓴 정구(鄭逑)[1543~1620]는 본관이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과 조식(曺植)의 문인이다. 모든 방면의 학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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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정구가 1616년 송원기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지은 제문. 「제송학무 원기 문(祭宋學懋 遠器 文)」을 쓴 정구(鄭逑)[1543~1620]는 본관이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과 조식(曺植)의 문인이다. 모든 방면의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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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 구암서원에 제향된 조선 후기 문신 서성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신익성이 지은 제문. 「제판서서공 성 문(祭判書徐公 渻 文)」을 쓴 신익성(申翊聖)[1588~1644]은 본관이 평산(平山)이며, 자는 군석(君奭)이고, 호는 낙전당(樂全堂)이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아버지는 영의정 신흠(申欽)이고, 어머니는 이제신(李濟臣)의 딸이다. 신익성은 선조의 부마로, 정숙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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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8년 대구 출신의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억울하게 구금된 상황에서 지은 한시. 「차신자(次臣字)」의 저자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군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사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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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이자 의병장 구회신을 추모하는 재실. 창포재(菖蒲齋)는 능성구씨(綾城具氏) 무태(無怠)[현 북구 동변동·서변동] 입향조 구회신(具懷愼)[1564~1634]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구회신의 자는 경중(敬中)이고, 호는 계암(溪巖)이다. 아버지는 종사랑 구대성(具大成)이고, 어머니는 옥천황씨(玉泉黃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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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채필훈(蔡必勳)[1759~1838]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덕요(德堯), 호는 금와(琴窩)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채선길(蔡先吉)이고, 할아버지는 채시침(蔡時沈)이다. 아버지는 채사학(蔡師學)이고, 어머니는 홍철(洪澈)의 딸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부인은 윤임각(尹任覺)의 딸 영양윤씨(永陽尹氏)이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동생은 채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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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창건된 재실. 체화당(棣華堂)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義兵將)으로 전공을 세운 이재(怡齋) 서사진(徐思進)의 아들 삼 형제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재실이다. ‘체화’는 『시경(詩經)』「상체(常棣)」에 출전을 둔 것으로, 형제간의 우애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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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조야동에 있는 달성서씨 현감공파 문중 재실. 추모재[북구]는 달성서씨 사과공(司果公) 서사도(徐思道)[?~?]의 어머니인 영양최씨(永陽崔氏) 이하 4대 선조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달성서씨 현감공파 문중에서 건립한 묘소 수호 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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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효자 서명보가 쓴 간병 일기와 거상 일기를 서식이 다시 정리하면서 쓴 발문. 서명보(徐命普)[1704~1778]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가 화극(華極)이며, 호가 북곽(北郭)이다. 아버지는 서익지(徐翊祉)이고, 어머니는 오산김씨(鰲山金氏) 김억추(金億秋)의 딸이다. 서명보는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고 인자하며 효성스럽고 근신하였다. 일곱 살에 어머니의 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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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읍내동에 있는 칠곡향교의 대성전. 향교(鄕校)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공자와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유학을 가르치는 지방 교육기관으로 역할을 담당하였다. 향교는 대성전·동무와 서무 등 공자 및 유교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배향하는 공간과 명륜당·동재와 서재 등 유학을 가르치고 공부하는 강학 공간으로 구분된다. 칠곡향교(漆谷鄕校)는 강학 공간인 명륜당을 앞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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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2가에 있는 칠성석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칠성석의 유래」는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2가에 있는 칠성석(七星石)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암석 설화이자 지명유래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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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인 오숙이 서거정의 「대구십영」 중 「침산만조」를 차운하여 지은 한시. 「침산반조(砧山返照)」의 저자 오숙(吳䎘)[1592~1634]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자는 숙우(肅羽), 호는 천파(天坡)이다. 아버지는 오사겸(吳士謙)이고, 어머니는 이집중(李執中)의 딸이다. 오숙은 문장이 간명(簡明)하며 뛰어났고, 당대의 문장가인 장유(張維)[1587~1638], 이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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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팔달동에 있는 조선 후기 대구판관 서유교를 기리는 불망비. 판관 서후유교 영세불망비(判官 徐侯有喬 永世不忘碑)는 조선 후기 대구판관으로 재임하였던 서유교(徐有喬)[1791~1859]의 치적을 기리고자 건립한 비석이다. 서유교는 달성서씨(達城徐氏)이며, 1792년(정조 16)에 서른여덟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진사시와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849년(헌종 15)에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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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능성구씨 사당. 표절사(表節祠)가 있는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은 능성구씨의 집성촌이다. 임진왜란 때 팔공산에서 창의한 구회신(具懷愼)이 종전 후 대구 무태리에 입향·정착하면서 8대조 문절공(文節公) 송은(松隱) 구홍(具鴻)을 제향하기 위하여 1600년(선조 33)에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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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학교에서 지켜야 할 규범에 관하여 쓴 글. 「학교모범(學校模範)」은 학교에서 지켜야 할 규범에 대하여 쓴 글이다. 저자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군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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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허목이 1680년 대구에서 말년을 보낸 정구의 문집에 쓴 서문. 「한강선생문집서(寒岡先生文集序)」의 저자 허목(許穆)[1595~1682]의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자는 문보(文甫)·화보(和甫)이고, 호는 미수(眉叟)이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남인(南人) 중 청남(淸南)의 영수이다. 허목은 조선 후기 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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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화수정(花樹亭)[능성구씨(綾城具氏)]은 1690년(숙종 16) 증(贈) 호조참판 구도징(具道徵)[1667~1717]이 건립하였다. 구도징은 ‘두문동 72현‘인 구홍(具鴻)의 후예이며, 임하(林下)에 은거하며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추구하였다. 처음에는 ‘포금정(抱琴亭)’으로 편액(扁額)하였는데, 1901년에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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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1가에서 수집된 규방가사. 「효감가라」는 권영철(權寧徹)이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1가에서 수집한 규방가사(閨房歌辭)이다. 1979년 권영철이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규방가사』 1권에 수록되어 있다. 작자는 미상이고 필사자는 원골댁이다. 「효감가라」에서는 삼강오륜(三綱五倫) 중에서도 효(孝)가 으뜸이라고 하며, 옛 성인들의 효를 본받으라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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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월성최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는 효열각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효열각(孝烈閣)」은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월성최씨(月城崔氏)의 효행과 열행(烈行)을 기리는 효열각(孝烈閣)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효행담이자 열부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