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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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원수격인 박정희 의장이 울릉도를 방문한 지도 어언 40여년이 훌쩍 지났다. 저동이 동해안 어업전진기지로 지정됨으로써, 박 의장의 약속이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울릉 주민들은 40년이 지나도록 완성을 보지 못하는 일주도로에 대해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울릉도 주민들은 아직도 일주도로가 완성되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이 많습니다. 40년 전에 울릉도 일주도로 건설은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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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지역에 있는 풍광이나 풍습 등을 보기 위한 여가 활동. 2005년 한국해운조합에서 실시한 전국 여객선 터미널에서 섬을 다녀온 여행객을 대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섬과 가장 가보고 싶은 섬을 조사한 결과 울릉도는 가장 기억에 남는 섬으로 20%가 응답해 제주도에 이어 2위를 했으며, 가장 가보고 싶은 섬으로는 34%로 1위를 하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섬으로 울릉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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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어선들이 드나드는 다목적 어항(漁港)인 저동항은 망망대해 동해에 떠 있는 섬 울릉도의 울릉읍 저동1리·저동2리와 도동3리에 위치해 있다. 1967년 어업전진기지로 지정되면서 개발되고, 1971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어항 공사 기간 중 태풍과 해일 등으로 공사에 애로를 겪었다고 하는데, 물양장 980m·돌제 85m·선양장 7m 등 기본 시설은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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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및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박정희 의장이 울릉도에 도착한 것은 1962년도의 일이다. 당시 그는 군함을 타고 울릉도를 방문하였다. 그가 도착한 것은 도동항. 도동항 은 말이 항구이지 방파제나 접안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한 초라한 어촌에 불과하였다. 국가원수격인 박의장의 방문에도 울릉의 항구는 별다른 대책을 마련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접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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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의장이 물에 빠지자, 가장 당황했던 사람들은 박의장 자신은 물론 수행원들이었다. 박의장은 귀경하자 마자, 곧장 ‘울릉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하게 되고, 온전한 방파제 하나 없던 저동에는 불과 2년 만에 방파제가 만들어졌다. 저동이 동해안 어업전진기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울릉도 주변해역의 풍부한 수산자원 때문이겠지만, 울릉도에서 제일 먼저 방파제가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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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의장의 울릉도 방문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와 감사의 취지는 관해정 내의 「朴議長閣下記功碑趣旨文」에 잘 나타나 있다. 1963년 7월에 건립한 기공비는 1962년 10월 10일 박의장 방문 이후, 울릉도의 변화상 및 기대감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비의 원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朴議長閣下記功碑趣旨文 東海의 孤島인 鬱陵島는 大韓民國의 領土이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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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의장의 방문으로 저동 지역의 개발은 본격화되었다. 1967년 어업전진기지로 지정되어 1979년 12월에는 항만공사가 완료된 저동항은, 울릉도에서 가장 큰 항구이다. 동해안 어업전진기지로 지정되면서, 가장 시급한 것은 방파제 건립이었는데, 방파제가 완성되어 주민들의 숙원 사업이 이루어진 셈이었다. 현재의 방파제는 그때 만든 방파제에서 약 4m 가량 높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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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조부, 조모, 증조모까지 함께 이 집에서 살았죠. 할머니는 80살 정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면사무소 다니다가 나오셔서 사설 우체국한다고 하다가 사고로 돌아가셔서 그것을 하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넘겼죠. 누나 셋, 동생 있고. 할아버지 모시고 살아야 할 처지에 삼촌들은 외지에 가 있어서……. 중학교 나와 할 만한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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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떠나, 그는 강원도 묵호에서 한 동안 정착하였다. 처음에는 양복점을 하였고 그 뒤 탄광사업에 손을 대기도 했다. “묵호에서는 양복점을 하여 돈을 많이 벌었지. 당시 강원도 부자들은 탄광을 했는데, 나도 시작하게 된 거야. 철원 탄광이었는데……. 그때는 박정희(대통령)가 혁명을 일으켰을 때인데, (신청서가) 하루 늦어지는 바람에 들통이 났어. 대한석탄공사에 사업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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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선거권을 가진 지역민이 공직에 임용될 사람을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행위. 일반적으로 선거는 ‘일정한 조직이나 집단에 있어서 특정의 지위에 취임할 사람을 그 조직이나 집단 구성원들이 집합적인 의사표시를 통하여 선정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즉 다수인이 일정한 직에 취임할 사람을 선출하는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선거는 반드시 국가기관의 선임에만 한정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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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의장이 울릉도를 방문하기 전까지, 저동항은 자연항이었다. 주민들이 해마다 촛대바위 부근에 석축을 쌓았으나 태풍이 한번 불면 여지없이 휩쓸려 나가곤 했다. “옛날에는 망태기에 줄 매가지고 미고 했는데, 20년 했는데, 저기 보이는 촛대바위라고 있지요. 저기 3분지 1도 못 했어. 지금 높이가 10m 되는데 그전에는 큰 파도 한 번 치면 무너지고, 또 쌓아놓으면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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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엔 도동항에서 출발하여 배가 포구마다 다녔어. 풍랑이 심하면 배가 자주 끊어져 고립될 수밖에 없었지. 1918년에 폭 1~2m, 연장 59km의 불완전하지만 일주도로가 구축되어 이용했지만 여러 차례의 폭풍, 폭우로 끊기고 노폭이 협소해서 1940년에 보수해 사용했었어. 그게 1959년 9월의 사라호 태풍으로 인해 해안선 도로는 형체조차 없어졌지. 산 넘어 가는 옛길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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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정부에서 수립한 울릉도 개발을 위한 계획. 1962년 10월 11일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이 해군 함정 편으로 울릉도에 도착하여 다음날 울릉군청에서 군수로부터 현황 브리핑을 들었다. 이때 박정희는 울릉도민들의 섬 개발을 위한 창의성 있는 노력을 치하하고, 섬 개발을 위해 더 노력해줄 것을 당부하면서 중앙에서도 적극 도와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이로 인해 울릉도 자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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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동마을은 울릉도 개척 당시 갯벌에 모시가 많이 자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시가 많은 갯벌'이라는 뜻으로 모시개로 불리다가, 한자 표기로 모시 저(苧)를 취하여 저동(苧洞)으로 불리었다. 저동마을은 뛰어난 자연풍광과 더불어 울릉도에서 가장 큰 부두를 갖춘 항구도시이다. 마을 앞 항구 전경은 일출풍광으로 잘 알려진 우뚝 솟아 있는 촛대바위와 대나무가 많은 신비의 섬인 대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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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 사회에는 다양한 이해관계로 인하여 항상 희소 자원의 획득과 배분을 둘러싼 대립이나 분쟁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대립이나 투쟁을 조정하여 통일적인 질서를 유지하는 주요 수단으로서 정치라는 현상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것이며, 정치는 주로 국가나 정부라는 제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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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 있는 중등 보통 교육기관. 초등학교 과정을 수료했거나 이와 동등한 자격이 있는 학생에게 3년간의 중등 교육을 실시하는 교육기관이다. 1946년 3월 1일 광복 전 일본인 대상으로 하던 울릉도공립심상소학교를 인수하여 임시 사립중학교로 개교하였으며, 1946년 11월 5일 공립 우산중학교로 승격되었고, 1952년 12월 5일 울릉중학교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이후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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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이루어지는 주민이 정치·행정에 스스로 참여하여 지역 현안을 결정·운영하는 제도. 지방자치는 일정한 구역의 주민들이 법률에 따라 일정한 권한을 갖는 지방자치 단체를 구성하여 중앙 정부로부터 상대적인 자율성을 가지고 그 단체를 구성하는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생활과 관련된 지방적인 사무, 즉 지방의 정치와 행정 사무를 주민들 스스로의 의사와 책임 아래 선임한 자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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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이후 현재까지의 울릉도의 역사.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시 울릉도의 도사(島司)는 오타케 사쿠지로[大竹作次郞]였고 도청에는 내무와 산업 2개 과가 있었다. 미군정 하에서 울릉도청에는 초대 도사로 당시 남면장으로 재직 중이던 서이환(徐二煥)을 12월 13일자로 임명하여 도내 일반 행정과 치안 행정을 수행하게 하였다. 일본인 관리들과 민간인들은 소형 선박...